국회의원 총선에서 선거일 직전에야 후보자가 결정되고 별 연고가 없는 지역구에 전략공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에서는 기존 조직과 당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후보자는 지역구에 내려가 부랴부랴 동별로 당원들을 모아놓고 상견례를 하면서 출마의 변을 설파하고 지역구 당원조직을 수습하게 된다.
그러한 수준의 당원들과의 상견례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금지된 ‘정당의 당원집회’라고 기소된 사건을 변론한 적이 있다. 공소사실은 총 4회에 걸쳐 선거구민인 당원 약 80명을 대상으로 당원집회를 개최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공직선거법 제141조 제1항은 “정당은 선거일 전 30일부터 선거일까지 소속 당원의 단합·수련·연수·교육 그 밖에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선거가 실시 중인 선거구 안이나 선거구민인 당원을 대상으로 당원수련회 등(이하 이 조에서 당원집회라 한다)을 개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처벌규정은 공직선거법 제256조 제3항이다.
1심에서는 사안이 워낙 경미하여 당선유효형이 선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재판의 조기종결을 원하였기 때문에,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모두 동의하고 법리적인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항소심을 맡은 나는 항소이유로 무엇을 내세울지 이것저것 검토하면서 묘책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공책에다 제141조의 조문을 그대로 정서하고는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치고 몇 번을 들여다보았다. 항소이유로 삼을 만한 것이 마땅치 않았다. 일단 공소사실과 같은 정도의 상견례 모임은 ‘당원집회’가 아니고 제141조 단서에서 말하는 ‘당무에 관한 연락·지시 등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당원간의 면접’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그리 강한 주장은 아니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한다는 말이 있다. 몇 십 분 동안 조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니, 불현듯 조문의 주어가 ‘정당은’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당원집회를 개최한 지역구 ‘당원협의회’가 과연 ‘정당’인가 하는 의문이 스쳐갔다. 정당의 ‘지구당’ 제도는 이미 2004년에 폐지되었던 것이 생각났다. 제141조는 지구당이 있을 때의 조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당을 폐지하면서 제141조를 손보지 않았던 것은 명백한 입법 실수였다.
물론 입법론적으로 보면 2004년 이후에도 과거 지구당을 실질적으로 대신하게 된 당원협의회가 개최한 당원집회도 금지할 필요가 있겠지만, 실정법 해석상 ‘당원협의회’가 ‘정당’이 아니라면, 피고인은 무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죄형법정주의이다. 입법 실수로 인한 혜택은 피고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항소이유 제1점으로, “현행 정당법상 정당의 당부(黨部)는 중앙당과 시·도당만 있고 2004년에 지구당 제도가 폐지되었으니, 공직선거법 제141조의 정당은 중앙당과 시·도당을 의미하고 지역구 당원협의회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오해 주장을 내세웠다.
변호사인 내가 봐도, 아니 누가 봐도, 입법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얄미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정의감 넘치는 항소심 법원은 입법취지와 탈법방지를 강조하면서 “제141조에서 말하는 정당의 의미를 반드시 정당법 제3조의 중앙당이나 시·도당으로 한정하여 해석할 아무런 법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여 항소를 기각하였다. 내가 봐도 정의관념에는 부합하는 판결이다. 그러나 그것은 입법론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죄형법정주의원칙에는 반하는 판결이라 생각하여 상고를 하였다. 법관이 입법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법원은 피고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
“당원협의회는 시·도당 소속 하급기관에 불과할 뿐 공직선거법 제256조 제3항에 의하여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당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당원집회가 단순히 시·도당 소속 당원협의회 차원에서 개최된 것에 불과하다면 처벌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도679 판결)
대법원판결 후인 2010년 1월 25일 개정된 선거법은 위 제141조의 ‘정당’ 다음에 괄호를 치고 ‘당원협의회를 포함한다’는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입법상의 실수는 6년 만에 정리되었다.
법률의 허점을 찾아내고 죄형법정주의를 강조하면서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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