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상위권을 장식한 흘러간 정치인 이름 하나, 김옥두. 아닌 밤중에 웬 김옥두? 검색순위를 좌지우지하는 젊은이들은 탤런트 김옥빈은 알아도 김옥두는 모를 텐데…무슨 사고를 쳤나? 꾹~ 눌렀다. 나타난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친구 한화갑에게 보내는 편지. 이건 또 뭐람? 친구한테 할 말 있으면 문자를 보낼 것이지. 또 꾹~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동교동계 친구 한화갑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나의 동지이자 친구인 화갑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화갑아’도 아니고 ‘화갑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 내 ‘화갑이’하고 읽어보면 그 맛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불러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쓸 수가 없다. 그 ‘화갑이’가 뒤에 나오는 문어체 질문과 결합하면 묘한 언밸런스를 만들어낸다. 완전 코믹이다.
그런데 마냥 웃을 수가 없다. 너무도 절절하기 때문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 편지는 격문(檄文)이다. ‘토황소격문’류의 꾸짖는 글이다. 그런데 적을 꾸짖는 게 아니라 동지를, 친구를 꾸짖는 글이다. 그러니 차마 꾸짖지 못한다.
말을 빙빙 돌린다. 친구 사이에 빙빙 돌릴 만한 얘깃거리가 뭐겠는가? 45년을 함께 한 추억이다. 숱한 투옥과 고문으로 점철된 젊은 날들이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저러다 옥두가 맞아죽을지 모른다’고 염려하던 바로 그 친구와 함께 했던, 눈물 나게 아름다운 날들이다. 교도소에서 꽁보리밥에 돼지고기 한 점씩을 놓고 마주 앉아 기도하는 대목은 심금을 울린다. ‘혹시 저 녀석이 그새 내 몫까지 먹어치우지 않을까’하는 의심은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해도 그런 상황에서 충분히 품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등 뒤에 감춘 밥그릇을 꺼내놓고 45년을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부러워할 만한 친구가 틀림없다.
김옥두는 편지의 절반을 그런 얘기로 채운 다음에야 꾸짖는다. 그 꾸짖음은 준엄하고도 매섭다. 내가 받은 감명은 정치적인 성향과는 관계가 없다. 김옥두가 보여주는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나 친구에 대한 의리는 오히려 우파적 가치에 가까울 것이다.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모두 ‘차마 그러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갖고 있다고 했다. 불인인지심이 없었더라면 김옥두의 편지는 친구끼리 머리끄덩이 잡아당기는 대선판의 볼썽사나움에 불과했을 것이다. 김옥두의 불인인지심이 독자들의 불인인지심을 일깨운 것, 그것이 김옥두 검색순위 진입사건의 전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계산된 것이라고 말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말들을 합리적인 계산의 언어로 번역을 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화갑이’는 ‘옥두’에게 뭐라고 했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화갑이’는 ‘옥두’의 진심(眞心)을 알고 있다.
정치판에서 진심은 천연기념물이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진심을 드러내는 일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나는 당신들의 먹잇감이요’라고 외치는 일과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판에 진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분명히 틀렸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없을 테니까.
사실 진심은 정치학의 오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정치인들의 생각은 대체로 마키아벨리를 근거로 삼는다. ‘군주론’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사람들은 당신을 볼 수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인의 겉모습만 볼 수 있지 정치인의 진심을 만져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겉만 번드르르한 ‘이미지 정치’를 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해도 ‘매우 드문 사람들은’ 그 진심을 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정치인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유권자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유권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정치인을 만져보려고 한다. 가혹할 정도로 후보의 도덕성을 검증하고 TV로 중계되는 토론회를 시청한다. 대부분의 선거과정은 후보를 만져보게 하는 과정이다. 만져보고 진심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대선이 며칠 안 남았다. 잘 만져봐야 한다. 속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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