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술, 혹은 미술시장이라 하면 대개 현대미술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고미술품이다. 비록 현대미술의 위세에 밀려 주춤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술시장을 견인했던 것은 바로 고미술품들이었다. 고미술품은 대략 100년 정도가 지난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물건들로 골동(汨董)·고완(古玩)·고동(古董)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골동취미는 교양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었으며, 현대미술에 비해 전문적인 안목과 식견을 지닌 견고한 애호가 층을 확보하고 있다.
2011년 한국 미술시장 결산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미술품 경매회사 8곳의 낙찰총액은 918억830만원으로, 이중 약 30%가 고미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2010년 고미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16% 정도였던 것에 비한다면 비약적인 신장세라 말할 수 있다. 이는 경매시장의 상위 10개 작품 중 3점이 고미술품이었던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중 조선시대 ‘백자청화운룡문호’가 18억원에 낙찰되었고, ‘백자청화산수문호형주자’는 15억6000만원에, ‘십장생도 8곡병’은 13억5500만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9월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이라는 작품이 무려 34억에 낙찰됨으로써 고미술품의 새로운 최고가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씨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등을 곁들인 16면으로 이루어진 서화첩이다. 특히 그중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가 1000원권 화폐의 도안으로 사용됨으로써 화제가 되었고, 삼성문화재단이 낙찰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만으로 본다면 모두 10억 이상의 고가이지만, 요즘 국민화가로 한창 주가가 높은 박수근의 작품이 4억원 정도에 거래될 2001년 당시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가 7억 원, 고려 청자상감 매병이 10억9000만원, 조선백자철화 항아리가 16억2000만원에 팔렸던 것을 상기한다면 최근 일련의 고미술품 가격의 고공행진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박수근의 ‘빨래터’란 작품이 45억2000만원, 이중섭의 ’황소’가 35억6000만원에 거래된 것에 비한다면 고미술품은 여전히 평가절하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간 고미술품은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미술시장이 팽창할 때도 고미술 시장은 예외였다. 이는 경제 주체 세대의 교체에 따른 전통적 애호층의 감소, 골동취미에 대한 인식 부족, 새로운 수요층 발굴 실패, 작품의 진위 시비 등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고미술품의 최고가가 속속 갱신되고 있는 현상은 고미술품이 점차 본연의 저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라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사실 고미술품에 대한 애호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골동 취미는 벽(癖)이라 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며 깊은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일단 골동에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고들 한다. 골동에 대한 애호층은 대단히 충직한 마니아들로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시류의 영향을 별반 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미술품은 그 질적 가치에 대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경제발전에 따른 사회발전 양식을 볼 때 고미술품에 대한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맞다. 그러나 고미술품에는 현대 미술품과 달리 필연적으로 진위문제가 따르게 된다. 이는 대단히 전문적인 영역으로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간 고미술계의 침체를 바로 진위문제에 대한 시비에서부터 찾을 정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이 부재한 실정이니 전적으로 자신의 안목에 의지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가의 고미술품은 인사동을 중심으로 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미술품은 장안평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작고 저렴한 민속품 등에서 시작하여 점차 자신의 안목을 키워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만약 고가의 고미술품에 관심이 있다면, 주요 옥션 등을 통해 거래하는 것이 그나마 컬렉션의 수업료를 절감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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