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을 공부하면서 의대 시절과 가장 차이나는 점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답안지’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의대 시절에는 내가 시험지에 현출해야하는 답의 길이가 문제보다 짧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던데 반해, 로스쿨에서 법학공부를 하면서는 답의 길이가 문제의 길이보다 훨씬 긴 경우가 많다(실무과목을 접하면서 문제와 함께 제공되는 자료를 합친다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지만). 시험이 시작되면 기본적으로 16절지 크기의 답안지가 제공이 되고, 그 답안지에 답을 적으면서도 결론만 간단히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현출해내는 법리적인 과정과 각종 학설까지 적어가는 일이 보통일은 아니다. 하루에 시험이 두세개 있는 날이면 공부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답안지를 적어가면서 느끼는 고통이 말 그대로 ‘지옥을 보는’ 날이 된다.
사실 답안지를 어떻게 적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비단 로스쿨생이나, 법대생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신림동의 법학서점을 돌아다녀보면 소위 말하는 ‘고시체’라는 글씨체를 가르쳐주는 교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법에만 신경쓸 수 없다는거다. 우스개 말로 여학생들이 사법고시에서 합격률이 높아진 데는 글씨체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는 판이니 말이다. 가끔 교수님 중에도 글씨를 잘 쓸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있다. 교수님 혹은 채점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글씨체가 깨끗하고, 읽기 쉬운 답안지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학 성적’이 아닌 ‘글씨체’ 때문에 중요한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음에도 그것을 제도적으로 고쳐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뿐만 아니라 손이 불편한 사람이나, 왼손잡이의 문제도 있다. 지금 글을 쓰는 나같은 경우엔 한꺼번에 오랜시간동안 심폐소생술을 혼자서 하다가 오른쪽 손에 인대가 끊어져 있는 상태이다. 수술을 권유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수술을 미루고 있어서 아프지만 그냥 쓴다. 다행히도 양손잡이인 관계로 시험때는 왼손으로 글씨를 주로 쓰지만 아무래도 느리고, 글씨체도 이상하게 바뀐다. 급하면 오른손으로 쓰기도 하지만 글씨를 오래 쓰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단점이 되는 것인지는 아마도 이 글을 읽어보시는 분들은 모두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아주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외상이나 혹은 사고 등에 의해서도 학교 성적은 물론이고, 변호사 시험이나 사법고시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가 있다. 법학실력이 아닌 제3의 요인으로 인해 수험생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좋은 평가방법’은 아닐 것이다.
물론 실무에서 손글씨를 써야 한다면 답안지를 작성하면서 하는 고생, 글씨를 연습하는 것도 하나의 훈련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 과연 손글씨로 소장을 작성하고, 손글씨로 문서를 작성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소송관련 서류들은 물론이고, 의뢰인들이 가져오는 자료에서도 손글씨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시간을 긴 문장을 써내려가야 하는 시험에서 왜 굳이 손글씨를 고집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시험 때 노트북으로 작성을 하게 되면 답안 작성시 발생할 수 있는 수정문제, 글씨체나 기타 다른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학생들이 ‘법학 이외의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문제점들을 상당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제점도 없지는 않을게다. 노트북을 이용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문제, 관리문제, 그리고 글씨를 잘 못쓰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오랫동안 글씨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배려하는 행위가 오히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역차별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노트북의 가격 등을 생각해보면 비용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듯하다(한번 구입하면 최소한 10번 이상은 쓸 수 있을테니). 노트북을 학교나 관할 기관에서 직접 관리하고 네트워크 등을 차단하면 커닝 등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실무에서 컴퓨터가 사용되는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컴퓨터를 연습해야하는 과정이 손글씨를 연습해야하는 과정보다는 훨씬 업무에 직접적 관계가 있는 실무적인 훈련과정이 되지 않을까? 그것도 힘들다면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로스쿨은 실무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실무적인 법조인을 만드는 곳이다.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더 ‘실무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우리의 ‘손’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상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실제같은 교육과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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