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0. 9. 16. 선고 2008다97218 전원합의체 판결

한삼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Ⅰ. 사실관계
주식회사 W은행(이 사건의 원고)은 1996년 7월 15일경 K종합금융 주식회사를 통하여 S건설이 발행한 액면금 50억원의 기업어음(CP)을, L종합금융 주식회사를 통하여 K건설이 발행한 액면금 100억원의 기업어음(CP)을 각 매수하였으나(이하 총칭하여 ‘이 사건 CP 매입’이라 한다), 그 후 S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절차에서 1999년 3월 29일자 기업개선작업약정에 따라 위 150억원은 전액 주식으로 출자전환되었다. 원고는 1997년 9월 12일 S건설에게 200억원을 대출하였으나(이하 ‘이 사건 대출’이라 한다), 그 중 약 65억원만 변제되었고, 나머지 134억8500만원은 S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절차에서 1999년 3월 29일자 기업개선작업약정에 따라 그 무렵 전액 주식으로 출자전환 되었다. 원고는 1997년 10월 13일 S건설의 제98회 회사채 원리금의 지급을 보증하였다가(이하 ‘이 사건 제1 지급보증’이라 한다), 2000년 10월 13일 사채권자에게 원리금 합계 300억원을 지급함으로써 S건설에 대해 동액 상당의 구상금 채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 후 원고는 2001년 6월 22일 H유동화전문유한회사에게 S건설에 대한 300억원 상당의 위 구상금채권을 68억387만7795원에 양도하고, 2001년 7월 2일 S건설에게 위 채권양도사실을 통지하여 그 무렵 위 통지가 도달하였다. H유동화전문유한회사는 S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절차에서 2002년 12월 20일자 기업개선작업약정에 따라 위 300억원 중 142억3020만원만 변제받고, 나머지 157억6980만원은 면제하였다. 원고는 1998년 6월 29일 S건설의 제101회 회사채 원리금의 지급을 보증하였다가(이하 ‘이 사건 제2 지급보증’이라 한다) 사채권자에게 원리금 합계 150억원을 지급하였으나, 그후 S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절차에서 2001년 6월 7일자 기업개선작업약정에 따라 위 150억원은 전액 전환사채로 출자전환 되었다. 원고는 이 사건 제1 내지 3 분식회계 결과 작성된 재무제표를 신뢰하여 이 사건 CP매입, 대출, 제2 지급보증을 하였다가 S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절차에서 체결된 기업개선작업약정에 따라 출자전환된 금액 상당을 현실적으로 회수하지 못하였고, 이 사건 제1 지급보증을 하였다가 대위변제한 300억원 상당의 구상금채권을 68억387만7795원에 양도하는 바람에 그 차액인 231억9612만2205원(300억원 - 68억387만7795원)의 손해를 입어 합계 666억8112만2205원(이 사건 CP 매입 관련 미회수액 150억원 + 이 사건 대출 관련 미회수액 134억8500만원 + 이 사건 제1 지급보증 관련 손해 231억9612만2205원 + 이 사건 제2 지급보증 관련 미회수액 15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위와 같이 분식회계를 지시한 S건설의 이사 또는 대표이사로 등기된 자인 이 사건의 피고에게 상법 제401조 또는 민법 제750조에 따라 일부 청구로서 위 각 손해액 중 이 사건 CP 매입 관련 손해배상금으로 12억3078만2213원, 이 사건 대출 관련 손해배상금으로 11억647만3209원, 이 사건 제1 지급보증 관련 손해배상금으로 47억3100만원, 이 사건 제2 지급보증 관련 손해배상금으로 12억3078만2212원 합계 82억9903만7634원의 지급을 구한다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Ⅱ. 소송의 경과
1. 원심판결
금융기관이 회사 임직원의 대규모 분식회계로 인하여 회사의 재무구조를 잘못 파악하고 회사에 대출을 해 준 경우, 회사의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채무와 회사 임직원의 분식회계 행위로 인한 금융기관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는 서로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가진 채무로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에 관하여는 일방의 채무가 변제 등으로 소멸하면 타방의 채무도 소멸하는 이른바 부진정연대의 관계에 있다(대법원 2008. 1. 18. 선고 2005다65579 판결 참조). 따라서, 이 사건 CP 매입 및 이 사건 대출과 관련한 원고의 쌍용건설에 대한 대출채권과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원고가 제공한 여신 금액의 회수라는 단일한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밀접한 관련공동성이 있으므로 그 중 하나의 채권이 만족을 얻게 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채권도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멸한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채권금융기관들과 재무적 곤경에 처한 기업 사이에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도모하고 채권금융기관들의 자산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기업개선작업약정은 채권자들인 채권금융기관들과 기업 사이의 사적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그러한 합의의 내용에 따른 효력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원고와 S건설 사이에 1999년 3월 29일자 기업개선작업약정에 기하여 이루어진 출자전환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출자전환할 채권액을 정하여 이를 발행가인 5000원으로 나눈 수량의 신주를 받기로 하고 위 출자전환 채권을 납입대금과 상계하기로 합의한 것이어서 기업개선작업약정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출자전환할 채권액과 새로 취득하는 신주의 가치를 같다고 보아 그만큼의 채권액은 소멸하는 것으로 의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원고로서는 출자전환 당시 출자전환할 채권액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채권의 만족을 얻었고, 채권의 만족을 가져오는 위와 같은 사유는 쌍용건설의 원고에 대한 원래의 채무와 부진정연대채무관계에 있는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채무에 절대적 효력을 발생하므로, 이로써 위 손해배상채무도 위 각 출자전환 채권액만큼 소멸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2. 대상판결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한 상계 내지 상계계약의 효력이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 미치는 효력
[다수의견]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자신의 채권자에 대한 반대채권으로 상계를 한 경우에도 채권은 변제, 대물변제 또는 공탁이 행하여진 경우와 동일하게 현실적으로 만족을 얻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므로, 그 상계로 인한 채무소멸의 효력은 소멸한 채무 전액에 관하여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 대하여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채권자와 상계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이러한 법리는 채권자가 상계 내지 상계계약이 이루어질 당시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의 존재를 알았는지 여부에 의하여 좌우되지 아니한다.
[반대의견] 연대채무의 경우에는 민법 제418조 제1항에서 채무자 1인이 상계를 함으로써 다른 연대채무자의 채무도 상계한 금액만큼 소멸한다는 이른바 절대적 효력의 취지를 규정하고 있으나,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에는 그러한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이에 관하여는 합리적인 해석에 의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다. 공동불법행위 등의 경우에 연대채무와 구별되는 부진정연대채무가 인정되는 취지와 사용자책임, 공작물의 점유자 등의 특수한 책임을 인정하고 특히 고의의 불법행위 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를 금지하는 민법의 태도로부터 알 수 있는 바는, 민법은 채권자 이중의 채권만족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도 불법행위 피해자로 하여금 현실적으로 채권의 만족을 얻게 하여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사정을 모두 고려하여 보면,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의 상계에는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지 아니함이 상당하고, 나아가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채권자와 상계계약을 한 경우에도 상계와 달리 볼 것이 아니다.

Ⅲ. 평석
위의 대상판결은,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양창수·대법관 민일영의 보충의견(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한 상계 또는 상계계약에 대하여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상대적 해석론을 취한다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어 다수의견과 같은 절대적 효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과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전수안의 보충의견(부진정연대채무자 1인의 상계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로부터 먼저 현실적 만족을 받을 수 있듯이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고자 하는 상대적 효력설의 장점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이 있을 정도로 다툼이 있고, 관련 평석도 제법 있다(가령 김재형,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한 상계 내지 상계계약의 효력이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게 미치는지 여부’, 중요판례분석, 법률신문사, 2011, 168~169면).
이 글에서는 쟁점인, 채무자 1인이 상계를 함으로써 다른 연대채무자의 채무도 상계한 금액만큼 소멸한다는 절대적 효력의 취지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418조 제1항이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에 유추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한 후 대상판결(다수의견)의 정당성 여부를 살피기로 한다.
민법 제418조 제1항의 부진정연대채무에의 유추 적용 여부와 관련하여, 학설은 상계의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나, 종전 판례(대판 1989. 3. 28. 88다카4994; 대판 1996. 12. 10. 95다24364. 다만, 대판 1999. 11. 26. 99다34499의 경우, 보험자가 피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행사하여 상계한 경우에 절대적 효력을 인정한 것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다툼이 있다)는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견해를 취했다. 한편, 일본 최고재판소 1978(소화 53). 3. 23. 판결은 ‘부진정연대채무자의 1인과 채권자 사이에서 실체법상 유효한 상계가 이루어지면 이로써 채권이 소멸한 한도에서 다른 채무자의 채무도 소멸한다’는 견해(절대적 효력)를 취하고 있다.
생각건대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에도 1개의 전부급부가 있으면 채무 전부가 소멸하는 점은 연대채무의 경우와 같다. 한편, 채무이행의 간편한 결제수단인 상계제도의 경우,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상계를 하여 채무의 이행이 이뤄져 채권이 만족을 얻게 되면, 그에 따라 다른 채무자도 자신의 채무를 면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제418조 제1항은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에도 유추 적용된다고 하여야 한다. 다만, 부진연대채무에서는 연대채무의 경우와 달리, 채무자들 사이에 주관적인 공동관계가 없기 때문에 제418조 제2항이 유추 적용되지 않을 뿐이라고 하여야 한다(대판 1994. 5. 27. 93다21521).
상계는 변제·대물변제·공탁과 마찬가지로 채권의 만족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또한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상계를 한 경우에 당사자들 사이의 법률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도,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에 상계의 절대적 효력을 인정한 대상판결의 태도는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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