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과를 나왔다. 나름 철학도입네 하는 마음이 있다보니 법학의 세속적인 분위기가 싫었다. 자고로 학문이라 함은 세속의 껍데기를 한꺼풀 벗겨내야 하지 않나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니 법학과 고시 공부는 구별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법학은 법학이라 일컬을 만한 학문적인 영역이 있고, 다음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이 적용되는 세상 이야기가 있다.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잘한다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한 사법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꼭 사실 판단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사법시험을 치르고 연수원을 다닐 때까지는 사실 판단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인이 되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당혹스러워진다. 이전까지 열심히 테스트를 받았던 내용은 책에 다 있다. 그 내용을 모두 암기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필요할 때마다 책을 찾아보면 되니까. 문제는 의뢰인이나 상대방이, 피고인이나 검사가 주장하는 사실 중에 누구 말이 맞는가인데도 연수원을 다닐 때까지도 그것에 대한 판단 능력에 대해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연수원을 다니면서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시댁이 있는 전주로 내려갔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울증에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도 돌봐야 했기에 일산에서 전주로 내려가 아이를 데리고 대구로 가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다시 전주로 왔다가 일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2년 내내 되풀이했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그러다 가끔씩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동기들의 푸념도 들어줘야 했다. 당시 연수원에서는 고민이 있는 동기들은 기피 대상 1호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성적, 성적, 성적. 오로지 성적만이 중요했고 그 기준에 따라 판검사가 정해졌다. 모두들 판검사가 되기 위해 미쳐 있었다. 교재 이외의 책을 읽는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들은 과거에도 그랬다. 대학 들어오기 전에도 학교 공부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고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고시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읽어본 책이라고는 법학 책뿐인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그후 연수원에 들어와서도 그 모양이니…. 정말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지만 존경할 만한 친구는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 그들이 세상 이야기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연수원 다닐 땐 아무 고민 없이 공부에만 매달릴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세상에 나와 법조인으로 5년을 살고 보니 차라리 내 삶이 나았지 싶다.

연수원 동기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친구가 있었다. 정말 상식이 부족했고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판사로 임관되는 걸 보고 “악”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공판중심주의와 함께 최근의 재판 트렌드 중 하나가 원심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원심에서 증인신문을 한 증인을 항소심에서 다시 부르기도 힘들어졌고, 피고인의 무고함을 다투기도 힘들어졌다. 덕분에 재판은 편해졌다. 항소심에서 별 다른 증거가 추가되지 않으면 원심 판단을 존중한다는 모토 하에 항소를 기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왜 아무런 조건 없이 원심 판단을 존중해야 할까. 존중할 만해야 존중하는 거 아닌가?

1심에서 정말 열심히 무죄를 다툰 사건이 있었다. 선고 결과는 유죄였고 피고인은 구속되었다. 난 애타게 판결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정작 판결문에는 내가 의문을 가진 쟁점에 대해서 일언반구가 없었다. 이게 뭐지? 시쳇말로 멘붕이었다. 그 판사는 담당 변호사도 설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난 단 한마디의 토를 달 필요도 없는 사건을 가지고 죽자고 매달린 멍청한 변호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젠장.

다행히 그 재판은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난 무죄 판결을 받을 기회를 한번 놓친 것이다. 그 판사 때문에.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다. 검사가 기소를 해서 형사 법정에 설 정도면 명백히 말이 안 되는 기소는 흔치 않다. 다들 상당히 애매하다는 말이다. 그런 애매한 사건을 원심에서 잘못 판단해 버리면 이제 그 사건은 분명한 사건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원심 판단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그 판단은 항소심에서 확정이 된다.

원심 판단을 존중하라고 할 거면 원심 판사를 제대로 뽑아야 할 것이다. 사실 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판사들이 1심 결과를 망쳐놓으면 영원히 고쳐지기 힘들어지는 풍토가 되어가고 있다. 판사 선발 기준을 바꾸든지 원심 판단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수정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판단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판사를 선발해놓고 그 판사가 해놓은 원심 판단을 존중하라니,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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