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은 각자 역할 충실한 게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

예전에는 법조인인 되면 당연히 한국법학원 회원이 되고 회비를 내는 것으로 알았다. 의무적 가입에서 자율가입으로 변화한 후 한국법학원은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소명을 다하고 있다.
새내기 변호사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한국법학원은 법조계와 법학계를 아우르는 포괄적 법률가단체로 1956년 탄생했다. 한국민사법학회, 한국형사법학회, 한국공법학회 등 대표적인 법률학회들을 탄생시켰고 ‘저스티스’라는 학술잡지를 꾸준히 발행해 한국 법률문화 창달의 초석을 닦아왔다. 10월말 법률가대회를 마친 한국법학원 원장 김용담 변호사(64·법무법인 세종 대표)를 만나 법학원과 근황이야기를 들었다.
“격년으로 치러지는 법률가대회가 올해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제8회였던 이번 대회의 주제인 ‘사회통합과 법의 역할’에 대해서도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법률가대회가 국민이 법조계에 바라는 점, 기대하는 모습을 고민하고 풀어내는 장이 되었으면 했는데 이번 주제가 그런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공통의 과제를 찾아내는 작업이 법학원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정치, 경제·사회, 교육·문화, 사법 각 분야에서 헌법개정, 공생발전,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 헌법재판, 국민의 범위, 통일논의, 언론, 사법신뢰, 환경, 노동, 학교폭력, ADR, 국가안보, 지방자치, 의료분쟁 및 시스템, 회복적 사법 등 우리 사회에서 소통과 통합에 관한 문제들 16가지 주제의 세미나가 개최됐다.
다소 공격적일 수 있는 질문, ‘그래서 사회통합을 위해 법조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맡은 역할을 잘해내는 게 중요합니다. 입법부에서, 사법부에서, 검찰에서 각 영역에서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유일하고 효과적인 사회통합 방법론입니다. 법률을 적용하는 자가 입법자처럼 법을 해석·적용하려 하고, 입법자가 제때에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들이 통합의 걸림돌 아닐까요?”
작금의 법조계에 대한 신뢰추락은 아마도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국민의 눈에 띄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국법학원은 회비 강제징수가 없어지고 자율납부로 바뀌면서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졌다. ‘한국법학원 육성법’에 따라 국고보조를 받고 있긴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법학원이 발간하는 ‘저스티스’는 한국의 가장 전통 있는 법학 학술지로서 수많은 법률논문으로 법률문화를 성장시켜왔다. 매년 법학논문상도 시상하며 법조계와 법학계를 잇는 충실한 가교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법조인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진지한 연구풍토는 경쟁과 생업에 밀려 옅어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회원들이 ‘내 조직’이라 느낄 수 있는 스킨십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사이 김용담 원장의 고민이다.
변호사로서의 김 원장의 고민을 물어보았다.
“변호사로서 일한 지 2년밖에 되지 않고 사실심에 관여해야 제대로 변호사일을 하는 건데 저는 상고이유서 검토 정도 하고 있어서요. 써온 상고이유서 검토하고 기록 읽고 의견을 말하는 정도예요. 법무법인 운영에도 거의 관여하지 않고요. 도움이 되는지 걱정입니다. 하하. 세종에 와 보고 놀란 점은 역동성이에요. 공적인 활동, 봉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예상보다 크고 깊어요. 공적인 역할,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무감도 크더군요.”
김 원장은 고된 대법관 생활을 마친 후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2009년 9월 하버드로스쿨의 방문연구과정에 참여해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들을 공부하고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읽는 우리 법원’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대법관 시절을 회고하면 엄청난 격무였다는 게 인상이 깊을 것 같다.
“사법의 상층구조가 단일화된 미국도 아니고 분업이 확실한 독일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정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상고사건의 상당부분이 무익한 소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법조인들도 법률분쟁이 조기에 마무리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인정할 겁니다. 상고허가제가 됐든 뭐가 됐든 조기에 확정하는 시스템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연방대법원에 연간 1만건이 올라오지만 100건 정도만 판단하는데 법률선진국으로 세계법조계를 리드하잖아요? 대법관 수를 늘린다고 해도 원하는 소송을 다 받아준다면 30~50명 정도 늘려선 안 될 겁니다. 정책적 결단과 국민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법조인들의 이해와 각오도 필요하고요. 하급심 강화로 해결한다는 것도 좀 그래요. 으레 항소하고 상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라면 하급심 강화가 의미가 없다고 봐요. 강화의 척도도 무얼 삼아야 하는지 알 수 없고요.”
아직은 대법관 마인드인 것 같다. 변호사들은 국민이 원한다면 판단해주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대법원은 법률심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선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로스쿨을 가보니 한국에 많이 주목하고 있더군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혼합국가로서 일본이 주목받다 20년 경기침체를 겪으며 법조계도 침체돼 관심이 사그라들었죠. 이젠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자료가 너무 없다는 게 문젭니다.”
지적재산권분야에선 세계도 놀랄 첨단기술을 다룬 사건들과 복잡한 이론을 다룬 사건들이 많이 있는데도 알리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함을 절감한다. 법학원도 이에 대한 사업을 벌이겠지만 법조인들이 관심과 열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완전히 새로운 케이스를 접하게 됐을 때 관련 분야 논문을 쓴 외국학자들에게 얼마든지 이메일이나 전화로 물어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판결을 한 뒤에는 번역해 보내주면 그 학자의 다음 논문에선 자연스럽게 판결소개가 이루어진다는 설명.
그는 요사이 인터넷으로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강의를 듣는 즐거움에 빠졌다고 말했다. 다 알아듣지 못해도 내가 이해하는 만큼만 들으면 된다는 편한 마음으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아이패드만 있으면 세계 최고 석학들의 강연을 접할 수 있는 세상에 감탄하면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법학전문대학원들도 LL.M과정 등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한국변호사 자격을 주고 자국에 가서 한국법을 알리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그것이 파이를 키우고 시장을 키우는 길이라고.
“최고의 강의를 수시로 접할 수 있는데 2류, 3류가 살아남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실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 법조인들은 세계에 어필할 충분한 자질이 있어요. K팝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기, 전자소송, 특허법원 등은 정말 자랑할만하죠. 일본 최고재판소 소장도 대전 특허법원 방문을 희망해 가보고는 감탄하더군요. 한국 법조인들이 세계로 진출하고 우리 법률문화를 알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하나같이 송무에만 매달려선 희망이 없어요. 젊은 법조인들이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요. 그럴수록 왜 법조인이 되었나를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법조인이 되어 부를 이루겠다는 생각이었다면 하루빨리 버려야죠. 로마의 법조인들은 정치, 관료 등을 목표로 하면서 법조를 통해선 사회적 신망을 얻으려 했어요. 무료로 변호해주면서 말이죠. 이제 법조인들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부도, 명예도 아니고 신뢰입니다.”
/ 박신애 편집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