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있는 칼럼의 제목은 ‘변호사가 사는 법’이다. 몇 명의 필진이 돌아가면서 쓰는 칼럼인데, 지금까지 나는 내 나름대로 개업변호사로서 느낀 점, 나누고픈 점을 소박하게 쓰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자극적으로 제목을 잡았었다. ‘변호사가 잘 죽는 법’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너무 자극적인 것 같아서 위 제목처럼 ‘잘 사는 법’으로 바꾸었다. 내가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나는 사법연수원 19기다. 얼마 전 연수원 동기인 김소영 대법관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 대법관 배출 소식과 함께 지방에서 다른 동기 변호사님이 투신자살하였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나는 대법관급 변호사가 되는 날, 한편으로 삶을 비관하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하는 고뇌에 찬 변호사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평소 동기 부모나 장인, 장모의 부고를 전하다가 동기 본인상 부고소식을 전하는 총무의 입장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특히나 객관적으로 보면 도대체 자살할 이유가 특별히 없는 선배의 행동이라서 더욱 그랬다. 그렇다보니 과연 변호사로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해볼 수 없었다.
물론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그날 동기의 가장 기쁜 소식과 가장 슬픈 소식을 동시에 접하면서 나와 내 동기뿐만 아니라 늙으나 젊으나 모든 변호사가 아니 모든 법조인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모범답안을 작성하여 보고, 실천도 해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 단초를 위하여 변호사가 ‘잘 사는 법’이란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따라서 아래의 글은 나의 현 상태에서 모범답안이다.
사법연수원에 들어와서 처음 느꼈던 것은 정말 똑똑하고, 열심인 동기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땐 그것이 삶의 자극이 되었다. 그런데 군법무관을 마치고 대형로펌에 들어가 보니 동기뿐만 아니라 선배나 후배 중에 잘나고 훌륭한 변호사들이 너무 많았다. 슬슬 자극이 아니라 주눅이 들었다. 물론 그때는 잘 몰랐다. 내가 로펌을 나와 구멍가게 변호사를 해보니 그때 내가 너무 잘난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눅을 벗어나니 행복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나에겐 치열하고 고독한 ‘사자의 삶’보다는 소박하게 자족하는 ‘가젤의 삶’이 맞았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우다. 거꾸로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좀 더 높이 오르지 않고 자족한 것에 대하여 불만이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소박한 가젤의 삶을 버리고 치열한 사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잘 사는 방법의 관건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자로 살고 싶은 사람이 가젤로 살아서도 안 되고, 가젤의 덕목을 타고 났는데 사자의 삶을 고집하면 상처투성일 뿐이다. 물론 항상 주위에서 잘났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법조인들은 자신이 사자가 아니라 그 많은 무리 중의 한명인 가젤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보인다. 그리고 아들에겐 허풍을 떨 수 있지 않는가! “이 아빠가 저 대법관과 동기란다. 내가 저만큼 유명해질 수 있었는데 너랑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서 개업변호사가 되었단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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