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확신을 제대로 알고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일에 실패하게 되더라도 다음에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결국 성취해내고 만다. 그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조직의 반응에 따라 존재감을 확인받고, 신앙처럼 점점 더 자기 충만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서 작은 실패에도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다음의 도전에서 주춤거리다가 실패하고 만다. 결국 삶의 중요한 성공요소 중 하나가 자존감이 아닐까 한다.

세월은 얼굴을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이 사라지거나 인생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변호사의 일상은 때로 무료하다. 누군가는 5년 주기로 권태기에 빠진다고도 하지만 내게는 항상 지루한 일상이었다. 가끔 큰 사건을 수임하게 되어 갑자기 은행잔고가 넉넉해진다거나, 어렵게 진행되던 사건에서 의외의 승소판결을 받을 때 카타르시스가 되기는 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 훌쩍 여행도 다녀오고, 다양한 취미생활에 몰두해보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삶보다는 의무나 책임감에 얽매여 끌려가는 인생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요즈음, 아주 고무적인 일이 생겼다. 헌법재판소로부터 ‘올해의 모범 국선대리인’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올 4월말, 헌법재판소의 국선대리인으로 관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결정이 있었다. ‘교도소 수감자가 출정비용 납부거부 또는 상계 동의거부를 했다는 이유로 행정소송의 변론기일에 출정을 제한한 행위는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내용의 인용결정이었다.

헌재의 국선대리인으로 활동한 지 5년 남짓 동안, 인용결정을 받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변화 없는 일상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나는 페이스북에 이 소식을 올렸고, 의외로 많은 분들이 댓글로 관심을 보여 주었다. 검사를 퇴직하고 지방의 모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인 J교수는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장을 받을 일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때는 기대보다는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몇 달이 지나 J교수의 예언이 이루어졌으니 지금은 외국에 나가 있는 그의 탁월한 예견과 그와의 인연이 먼저 떠오르고, 그리고 변호사로서의 재능과 운명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이 들었다.

사실 변호사가 승소판결을 받는다는 것은 사건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단순히 행운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정도의 노력과 경험 그리고 약간의 창의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으면 공적으로 존재감을 확인받았다는 즐거움이 있다. 더구나 최고의 헌법기관으로부터 표창을 수상한다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최소한의 실력을 인정을 받는 것이니 그 기쁨이 더욱 컸다.

혹자는 변호사는 수입의 크기로 능력을 인정받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소송의 승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특히 개업초기에는 사건 결과에 대한 중압감으로 사법시험의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이상의 심적 고통을 겪는다. 한 번의 실패가 깊이 각인되어 다음 사건에서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부터 앞선다면 변호사 생활이 괴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경력이 쌓여가면서 완벽주의도 조금씩 무뎌지고, 변호사로서 살아남을 방도를 터득하게 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자존감이란 생각이 든다. 헌법재판소로부터의 표창수상은 내게 기쁨이었고, 앞으로 더욱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기게 됐다. ‘상승정지 증후군’으로 시달리는 위기의 중년인 내게 큰 반전이 될 것 같다.

‘매튜 효과’처럼 올 한해의 성취가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위기감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변호사들이 더욱 강한 자존감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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