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 사주를 아는 지인에게 재미삼아 사주를 보았다. 건강운은 이래서 좋고, 가족운은 저래서 좋고…. “좋고” “좋고”가 반복되었는데, 다만 올해 하반기에 이동수가 있다고 했다. “그것만 넘기면 내년부터는 여차저차해서 잘 풀릴 텐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내가 놓치지 않고 “그 변화가 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라고 늘어지자, “변화가 있으면 자연히 알게 될 터이니 미리 알 필요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다. 아무튼 올해가 궁금하네”라는 도사 같은 말로 싱겁게 끝내버렸다.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렸다.

그러던 중 한창 바쁘던 어느 날 지인을 통해서 A 회사의 사내변호사 제의가 들어왔다. 별다른 생각 없이, 언제나처럼 그때그때의 업무만 열심히 해오던 잔잔하던 나날 가운데 던져진 갑작스러운 제안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로펌 변호사 생활에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새로운 자리를 찾았던 것도 아니었다. 연수원 수료 이후 줄곧 같은 로펌에서 근무했고, 훌륭한 고문님들과 선후배 변호사님들을 만나 많이 배우며 기쁘게 일했다. 인정도 받았고, 이 정도면 좋은 직장이다 생각했다. ‘안정’과 ‘변화’ 가운데 낀 햄릿인 양 근 두달을 고민했다. 결정하고 번복하기를 수십번, 변화를 선택했다. 지금은 로펌을 떠나 A 회사의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왜 ‘변화’를 선택했을까. 몇 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내 선택의 조건들이 무엇이었는지 차분히 복기해본다. 도전, 창조, 포기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다.

도 전
로펌의 5년 차 변호사는 이미 많이 알고 있고, 뭘 모르는지도 알고 있다. 모르는 것은 어떻게, 누구를 통해 알아야 하는지도 안다. 웬만한 변호사 일에는 익숙해져 있어서 뭘 맡겨도 큰 시행착오 없이 해낸다. 클라이언트도 파트너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고, 그래서 일도 가장 많이 한다. 나 역시 송무와 자문 모두 어느 정도 해봤고, 근 4년 가까이 공정거래 일을 주로 했다. 그 사이 빈약했던 트랙 레코드가 풍만해졌고, 이제는 숲과 나무를 골라가며 보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익숙해진 만큼 긴장감이 떨어졌다. 분명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해봐야 할 일이 천지고 알아야 할 지식이 태산인데도, 몸이 익숙해지자 마음마저 거만해진 것이다. 겸손을 버리는 순간 발전도 없다. 그래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불편을 껴안기로 했다.

창 조
변호사가 하는 일은 대개, 짧게는 수개월 전, 멀게는 수년 전, 심지어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을 법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물론 로펌에서는 사전에 계약서를 검토하기도 하고 거래 과정에서 협상을 하고 법률검토를 하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나 역시 앞으로 무슨 변화가 있을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항상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제는 과거회귀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내가 갑자기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함께 미래를 창조할 수는 있으리라.

포 기
로펌에서 난 참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급여도 비교적 만족했고, 조만간 유학을 갈 수도 있었다. 능력도 인정받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변화를 좇으려면 기왕의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어서, 포기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고민한 것은 사람이었다. 내가 로펌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사람이 아닌가 한다. 5년 동안 로펌의 고문님들과 변호사님들, 모든 스태프, 나아가 같이 일했던 클라이언트까지. 모두에게 많이 배웠고, 함께여서 응원과 위안이 되었다. 참 행복하게 일했다. 그 사람들과 어떻게 작별할 수 있나. 한동안 우울한 마음으로 망설였다. 그러나 그 좋은 사람들이 내 선택과 변화를 지지하고 응원해줬다. 그 따뜻한 마음 덕에 거자필반(去者必返)의 말을 할 수 있었다.
궁금했던 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도전, 창조, 포기. 선택의 조건으로 꽤나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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