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헐벗어가는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이내 침묵의 바다로 가라앉는다. 조용한 시간이다. 하지만 대선정국이 세찬 너울을 일으키고 있음을 바라본다.
아마 올 연말에 가장 불편하게 몸을 뒤척거릴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그는 2008년 2월에 취임하며 ‘법과 질서의 확립’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두었다. 이것이야말로 첫 단추를 잘못 꿴 일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되어 나라를 이끌며, 그는 내내 미래를 향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의 취임 초기 나는 한국헌법학회장으로서, 효용이 다한 현행 헌법을 개정하는 어젠다를 내걸고 사회 각 부문의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국가건설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해보려고 수차 노력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국정운영 내내 한국사회 전반에 흐른 침울하고 경색된 기운은 어쩌면 그가 스스로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사법부로 범위를 좁혀 본다면, 이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 운영은 불행히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양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한 이후 일관되게 ‘평생법관제의 정착’을 내걸었다. 현상의 고착을 꾀하는 점에서 이것은 ‘법과 질서의 확립’과 판박이다. 물론 법원은 사회공학적 설계를 행해나가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또 보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아쉬움이 펄럭인다.
평생법관제의 핵심내용은, 일선 법원장을 임기 2년제로 하되 중임까지 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기가 끝나면 재판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방침에 따라 2012년 2월 임기를 마친 현직 법원장 5명이 고등법원의 재판업무에 복귀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선 재판부에 연륜 있는 판사들을 복귀시켜 판결에 무게감을 더하고, 대법관 지명 때마다 되풀이되던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의 줄사직을 막고 나아가 전관예우 논란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 현실인식의 지평은 너무 좁다. 우리 헌법상 대법원장이 과연 사법부라는 한 조직, 기관의 수장에 그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은 대통령, 국회의장과 함께 가장 중요한 국가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직 사법부 조직의 안정을 꾀하는 평생법관제를 그토록 줄기차게 임기 내내 주장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좀 더 넓은 시야에서, 국민들의 고단한 생에 지친 심정을 위로하며 그에 합당한 역할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사법불신은 여전하고, 전관예우와 같은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고등검찰청의 김모 검사 사건이 우리하고는 상관없다고 말할 일은 아니다. 이쪽에는 광주고등법원의 선모 부장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가? 극히 일부의 예를 침소봉대하지 말라고 나무라실지 모르나, 역사에서는 언제나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 일이 뜻하지 않은 집중조명을 받는 법이다. 평생법관제가 전관예우를 완화시킨다는 과감(?)한 주장을 하시기에 앞서, 그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책들이 있지만 사법부는 그런 것들과 담쌓고 지낸다는 현실을 직시했으면 한다.
한국 젊은이들의 절망감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한편으로는 기득권자가 갖는 수성(守成)의 과도한 집념이 비열한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대법원장은 좀 더 적극적인 미래 한국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생법관제,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일어난 일을 입에 올려보자.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후보지명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후보들의 자격에 관한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만약에 일부의 비판대로, 평생법관제와 연결시켜 사법부 인사의 한 방편으로 후보지명을 한 것이라면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대법원장은 우리 헌법상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헌법재판소가 그 기능을 더욱 충실히 행사해나갈 수 있도록 재판관 후보지명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은 사법부 조직의 수장역할에 앞서는 헌법상의 의무이다. 과연 양 대법원장은 그렇게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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