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옌볜 출신 아주머니가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의 선거연설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더니 멈추지 못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분은 옌볜에서 처음 한국으로 와서 우리 집에서 일하게 되어, 한국생활이 처음이었다. 그날 한국 선거전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눈물을 훔치는 아주머니께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중국서는 연설할 적에 서로 자기가 못났다 하고, 그래도 자기가 어떤 일을 정말 잘하니 선출되면 그 일에 매진해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히 자기가 젤 잘났다 자랑만 하고 남은 욕하기 바쁜가? 코미디하는 것 같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직 공산당이 집권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선거문화가 우리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의 웃음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중국과 네거티브 선거로 얼룩진 우리 선거운동이 대비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선거전을 보면서 후보들이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벌이고 국민에게 그런 전략이 먹히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책 비판이 아닌 색깔논쟁이나 상대후보 신상털기를 통한 깎아내리기가 판을 치는 분위기는 개선되고, 건전한 자질 검증이나 사상 검증으로 대체됨이 마땅하다. 미국 대선전에서 보는 것 같은 치열한 정책토론이 우리에겐 왜 없는가? 토론을 통해 국민이 특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정책을 펼칠지 예상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예상을 통해 투표할 후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선거전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고, 이번 대선에도 메니페스토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헌신할 각오로 입후보한 분까지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정치나 선거문화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 후보가 던진 새로운 정치실험이라는 신선한 충격파가 있었지만 정책선거전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오히려 정책선거보다는 후보단일화에만 온 국민의 관심을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집중시키면서 정책선거를 할 시간을 오히려 잡아 먹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우리 국민이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연습을 한 것이 실질적으로는 몇 번 안 된다. 이번 대선이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지만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13대 대통령 선거 이전까지는 사실 선거라 하기 무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대선을 어떻게 현명하게 치를지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가 안 된 것도 사실이고 이제야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초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학생 때부터의 꿈이었다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이 대통령이 되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중학생 때부터 대통령을 꿈꾸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민주화였을까? 분명 그분에게, 그리고 다른 역대 대통령들에게도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그 꿈의 실체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당시 어떤 정치역학적인 상황 하에 어떤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후정리만이 있을 뿐.
이번 대선에서는 부디 대통령이 되기 위해 ‘경제를 살리겠다’ ‘복지를 하겠다’고 외치는 후보가 아니라,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후보 중 한명이라도 있길 바라고, 있다면 그가 당선되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자리나 직위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꿈꾸라고 가르치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불거진 검사비리들도 근본적으로는 목적과 과정이 전도된 잘못된 교육과 그로 인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자 꿈인 학생이 대학에 합격한 후 방향감을 잃고 방황하듯이,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검사가 된 후 검사라는 자리가 허용하는 권력에 취해 비리에 쉽게 다가가지는 않았을까? 만약 최근 신문지상을 달군 문제의 검사들에게 검사가 되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 과연 그와 같은 비리행위를 실행에 옮길 것을 꿈이라도 꾸었을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법조인이, 그리고 변호사가 되었는지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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