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하면서 더러 억울할 때가 있다. 다른 분야 사람들과 만날 때 그들의 선입견 때문에 불편할 때가 있다. 유명 MC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방송으로 나가고 있었다. 질문을 듣다보니 법조인에 대한 그의 인식을 알 것 같았다. 앞 뒤 꽉 막히고 권위의식만 가진 교만한 인간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법조인 하면 떫은 감을 문 표정들이었다. 나는 방송중인 MC에게 항의성으로 한마디 했다.
“법률가는 판례나 달달 외우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법 적용에도 영혼이 스며 있어야 합니다.”
“법에도 영혼이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회 최고 명사 반열인 나이 지긋한 그 MC의 질문에는 조소가 숨겨져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세상에 대고 대답해 주었다.
“변호사가 낮은 자세로 죄인의 입장이 되어 보고 법의 배경에 있는 정신과 함께 동행할 때 법은 영혼이 깃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떨떠름해 하던 그의 표정이 알 듯 모를 듯 조금 변하는 것 같았다.
요즈음 나는 여러 변호사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있다. 나름대로 변호사를 하면서 느끼는 여러점들을 나누는 것이다. 12년 변호사 생활을 했다는 하모 변호사는 다른 분야 사람들과 만날 때 거리감을 느껴왔다고 했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변호사란 두려움과 동시에 자신들과는 다른 교만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 편이라기보다는 수입이 좋은 전문 직업인으로 이런저런 관계를 이용해서 흑과 백을 바꿀 수 있는 법기술자로 본다는 것이다.
‘국민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구사하면서 그들만의 좁은 세계에 사는 권력 언저리의 종사자.’
하 변호사가 내게 보낸 자학적인 변호사의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 변호사들의 마음속에 ‘나는 너와 달라’하는 교만이 숨어있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인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바탕 위에 방향성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변호사개업을 했을 때다. 그는 친척 형을 사무장 겸 브로커로 고용했다. 런던의 피카딜리가에서 맞춘 고급양복에 금 시곗줄을 달고 다녔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 알던 영국관리와의 인연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해보려다 무안하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는 일등표를 가지고도 기차 칸에서 쫓겨나고 마부에게 무참하게 얻어맞은 후 몸으로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너와 달라’ 하는 교만을 버리고 기차의 삼등칸을 선택했다. 명품양복에서 가난한 민중들이 입는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부당한 권력과 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런 간디 변호사를 보고 모이기 시작하고 진심으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전문 기술자인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간디 같은 변호사도 이제 많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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