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나니 이제 완연한 겨울이 다가온 것 같다. 패딩점퍼를 입고 옷깃을 여며도 품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찬바람을 다 막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차가워지는 시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보면,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학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시험은 또 몇 번이나 밤을 새야 하나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다.
2학년 기말고사를 포함하여 총 여섯번의 시험이 남았다. ‘2학년이 되면 아무것도 몰라 힘들었던 1학년 시기보다는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래도 그 여섯번의 시험이 끝나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또한 막연한 희망으로 그칠 것 같다.
학부시절 전공이 응용화학이었던 탓에 법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 1학년 1학기 때에는 기본법을 2학기 때에는 소송법 등 소위 말하는 후사법을 공부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래도 법률용어가 익숙해지고 기초는 갖추어졌다고 생각했지만, 2학년이 되자 각종 실무과목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문서의 작성, 형사재판실무, 민사변호실무 등등….
1학년 때에는 혼자 공부할 시간이 많았는데, 2학년이 되니 실무과목의 과제가 많아지고 실무과목의 특성상 실체법의 배경지식이 요구되다보니 실무과목의 작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 혼자 공부할 시간이 더욱 부족해지면서 공부는 해마다 어려워졌다. 3학년이 되면 변호사시험을 준비해야 할테니 심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고, 지금까지보다 공부가 쉬워지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런 실무과목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소송서류를 뒤적거리며 변호사가 된 듯한 달콤한 착각도 해보고, ‘세상엔 별일이 다 있네’라는 생각이 드는 재미난 사건도 많다. 그리고 한참동안 서류를 넘겨보고 참고서를 찾아보면서 작성한 검토기록이 모범답안과 유사하면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찾아나가는 재미조차 없었다면, 공부가 너무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로스쿨에서의 시험기간은 열기가 대단하다. 상대평가로 학점이 부여되므로 학우들과 서로 경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학점이 실습과 취업, 장학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기숙사로 가는 길에,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냥 변호사 시켜줘도 되지 않나?’ 라는 건방진(?) 생각을 아주 잠깐 해본 적이 있었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안 될 일이고, 그리고 사실 그건 바라는 바도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자격을 취득함이 마땅하고, 스스로에게도 떳떳한 일이다.
시험을 거듭 거치다보면,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험기간동안 긴장감을 갖고 공부한 내용이 결국은 내재화되어 실력이 급격히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험을 거칠 때마다 사례들을 풀어나가는 스스로가 굉장히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시험기간이 아닐 때 시험기간과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끔찍한(?) 시험기간이 또다시 돌아오고 있다. 몇 번씩 밤을 지새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겠지만, 이 시험이 끝나면 예전에는 풀어내지 못했던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게 되리라.
비법학사에게 3년은 변호사로서의 기본을 갖추기엔 너무 짧다. 하지만 남은 여섯번 열심히 허물을 벗어낸다면, 굉장히 많은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게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끔찍한 시험은 때로는 반갑기도 하다. 마치 욕을 하면서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아주 재미있는 막장드라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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