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던 중 ‘변호사가 피고인이 아닌 고소인편?’이라는 칼럼이 눈에 띄었다. 그 칼럼을 쓴 기자는 ‘변호사의 직무를 의심케 하는 황당한 일’이라며 국선변호사가 고소인들에게 피고인이 높은 형을 선고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조언하는 것을 들었다며 개탄하고 있었다.

사실 그 보도가 정확하다면(오늘 이 글을 쓰느라 검색해보니 제목은 뜨는데 기사본문 검색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좀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 변호사가 황당한 변호사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는 데에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단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형사사법절차에 있어서는 직업에 따라 맡는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사사법절차에서는 피고인을 둘러싸고 수사경찰관, 검사, 판사, 그리고 변호사가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중 법조인인 검사, 판사, 변호사만 놓고 보면 그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혼동을 일으킬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범죄내용 때문에 그 사건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변호사는 법이 요구하는 역할, 즉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역할’에 충실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한 변호사는 그 의도나 결과에 관계없이 비난받게 되는 것이다.

법조 직역의 이런 특수성은 어떤 시기에는 법조인들의 마음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악법에 따라서도 재판을 하여야 하는 숙명을 지닌 법조인에게는 자신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설명해주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조인들은 법에 의하여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만하면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기본적 소임은 다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졌던 것 같은데 그 배경에는 법조인들의 역할 분담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이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이처럼 분명하고 중요한 원칙이고, 법조인들 스스로 유리하게 원용하여 오던 원칙임에도 이것을 벗어나려는 법조인들의 시도는 너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그런 경우들의 대부분은 부정한 목적과는 관계가 없어 보여 비난하거나 바로잡기가 더 어렵다. 물론 부정한 경우가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있더라도 감추며 하는 탓에 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결국 눈에 띄는 흔한 경우는 오히려 선의나 소박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관여하는 절차에서 불의가 살아남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흔한 것처럼 느껴진다.

공판검사의 공소유지에 문제가 있어 죄인이 처벌을 벗어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판사가 검사에게 “김OO를 증인신청하지 않나요?” “공소장을 바꾸는 것은 어떤가요?” 라고 하는 경우, 피의자가 교묘한 꼼수로 법망을 피해간다고 판단한 검사가 ‘어쨌든 악인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엇이든 찾아내서 처벌하려고 한다면? 고소, 고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혐의가 떠오른 것도 아닌데 피의자 주변을 저인망식으로 훑는 수사를 하는 경우 등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일 것이다.

문제는 그 걱정과 판단이 맞는 경우도 많겠지만 틀리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인데, 틀리는 경우의 피해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크고 깊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우리의 사법제도는 틀리는 경우에 주목하며 ‘제발 제 자리 좀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좋게 상상해 보면 앞의 변호사도 정의감에서 그랬을지 모른다. 직책상 어쩔 수 없이 변호는 하지만 사건 내용을 알고 나서는 피고인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에, 피해자 가족들의 손을 빌어 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역시 같은 위험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월의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습이 확인되곤 하는 탓에 큰 소리로 비난할 자신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그런 위험이 자주 눈에 띄니 달라진 세상에 기대며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고 욕심내지 말자고. 사법절차에서의 과욕은 그것이 선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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