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소수의견이 오늘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여야 하는 이유, 소수의견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해안 바닷가를 관할하는 조그만 법원에서 형사단독판사로 근무하던 1993년의 일이다.
맡은 사건의 죄명은 ‘수산자원보호령 위반’이고,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관할관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고 3중 자망어구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본 적이 없는 사건이라 궁금하기도 하여 하나하나 검토하여 보았다.
죄명부터가 이상했다. 무슨 포고령이나 긴급조치 위반도 아니고, 죄명이 ‘수산자원보호령 위반’으로 되어 있는 것부터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형법정주의 하에서 대통령령 위반죄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수산업법 관련조항은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다”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대통령령에는 필요한 벌칙을 둘 수 있다” “제2항의 벌칙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의 규정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범죄구성요건 해당 여부나 처벌 여부를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한 것이다.
나는 수산자원보호령의 모법인 수산업법 제52조 제2항, 제79조 제2항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여 직권으로 위헌제청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을 하였다(1994. 6. 30. 선고 93헌가15,16,17 결정).
“국회의 기술적·전문적 능력과 아울러 시간적 적응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형벌의 종류와 그 범위는 확실히 정하여져 있고 범죄의 대상이 되는 행위도 그 대강은 국민이 예측할 수 있도록 수권법률에 구체적으로 정하여져 있다고 볼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나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할 것으로 확신하고, 위헌제청신청이 없었음에도 직권으로 자신만만하게 위헌제청을 하였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 나와 같이 위헌론에 선 재판관이 1명도 없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9 대 0이라니.  

나의 헌법해석능력과 판단력에 대해 의문을 품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사실 단독판사로서 처음 위헌제청결정을 한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무참히 기각되자, 앞길이 창창한 청년법관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상당히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6년이 지난 후인 2010년 9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내가 받은 1994년의 합헌결정을 폐기하였다(2010. 9. 30. 선고 2009헌바2 결정). 이번에는 반대로 6 대 3이다. 나의 견해가 17년 만에 다수의견이 된 셈이다.
어제의 소수의견이 오늘의 다수의견이 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의견, 나의 의견이 이제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된 것이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인정되어 나로서는 명예회복이 된 셈이다.
그러나 몇 가지 개운치 않은 생각은 남는다.
2010년 위헌결정을 보면, 사건명이 ‘헌바’이고, ‘국선대리인’이 선임되어 있다. 법원이 1994년 합헌결정을 원용하여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하였다는 것, 그래서 남해안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일개 어부 피고인이 변호사도 없이 직접 헌법소원을 하였다는 것, 그리고 2009년 4월 22일 법률 제9627호로 ‘수산자원관리법’이 제정된 후에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하였다는 것.
나는 후배변호사들에게 법률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강조한다.
“어제의 소수의견,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 판례를 묵수·추종할 것이 아니라 납득이 되지 않으면 판례 변경을 주장해야 한다. 헌법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소액사건심판법 사건에서, 민문기 대법관이 소수의견을 개진하면서 판결문에 적은 유명한 문장이 있다.
“한마리 제비로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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