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2011년 기준 4500억원 내외에서 올해는 5000~5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단순한 수치로 보면 대단히 큰 금액이지만, 약 60조를 상회한다는 중국의 미술시장과 비교하여 보면 규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이렇게 미술 시장이 형성되고 꾸준한 발전을 보인 것은 지난 2005년 이후이다. 당시 시장 규모는 170억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이후 매년 몇 100%씩 성장하는 폭발적인 활황세에 힘입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미술품은 특별한 이들의 귀족 취미가 아닌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급기야 부동산이나 증권을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까지 인식되게 되었다. 이후 2007년 한 경매회사에서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작품이 무려 45억2000만원이라는 천문학적 가격에 낙찰됨으로써 미술시장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이후 미국발 외환위기와 경기침체 등 다양한 외부 요인에 더하여 ‘빨래터’가 위작 시비에 들게 되고, 또 각종 비자금 사건 등 비리에 미술품이 연루되면서 미술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냉각되었다. 이에 더하여 2013년부터 6000만원 이상의 고가 미술품에 대해 양도세를 부과하겠다는 정부 정책으로 말미암아 어렵사리 회생을 점치던 미술시장은 대단히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부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오는 동안 미술시장에는 특기할만한 흐름과 유행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단 미술시장에서 일정한 세를 형성하고 거래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작품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적인 거래로 시장을 유지하여 활발한 거래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의 미술시장을 견인했던 작가들은 유명한 작고 작가들이었다. 이는 이들의 작품들은 이미 미술사적으로 일정한 검증 작업을 거쳤을 뿐 아니라 일정한 거래 가격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이른바 ‘빅 3’로 일컬어지는 대가들이다. 호당 가격이 1억을 상회할 뿐 아니라 즉시 현금화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이들의 작품은 여전히 미술시장의 중심에 놓여 있다. 작품 한 점 가격이 수억을 호가하다 보니 이들을 중심으로 한 위작 시비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전문적인 위작 조직에 유족들까지 연루된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록 몇몇 기관에서 감정서를 발부하고 있지만 이들은 공신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 고가의 작품 거래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정한 유행이 미술시장을 휩쓸기도 하였다. 한때는 사진 같은 극사실의 그림들이 유행하더니, 바로 채소와 과일 같은 특정한 소재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우리 미술시장이 ‘과일가게냐 채소가게냐’ 하는 힐난을 들을 정도로 편향된 소재주의는 시장의 다양성을 훼손하였다.
이러한 유행은 화랑이나 화상, 그리고 매스컴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일부 작가들과 특정한 경향에 대한 화랑이나 화상들의 농간은 마치 주식시장의 작전세력과 같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시장 질서를 왜곡하기도 하였다.
유행은 한번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으로, 작품의 질과는 별반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0년대에는 이런 미술시장의 유행 주기를 대략 15년 정도로 보았으나 이후 점차 줄어들어 5년 주기설이 나돌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해마다 새로운 트렌드가 제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관적인 컬렉션의 방향이 정립되지 않았거나 미술품에 대한 안목없이 투기 목적으로 미술품에 접근하는 경우 이러한 유행에 현혹되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물론 전문적인 화랑을 통해 조언을 구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유행의 시발이 화랑들이나 화상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역시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에 앞서 역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부단히 안목을 키우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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