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자세로 일하다보면 한국변호사가 국제사회 리더될 것”

외국의 법조지도자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공통점을 느끼게 된다.
열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 감정을 드러내길 조심하는 우리 법조지도자들과는 달리 제스처도 크고-그래서 사진이 잘 나온다- 감정표현도 솔직하다.
문제점에 대해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건 누구나 같지만 훨씬 진솔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은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수수한 옷차림에도 밝고 환한 미소, 자신감 있고 열정에 찬 설명은 굳이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훌륭한 지도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유난히 추운 15일 아침 대한변협 인권재단 회의실에서 루시 스콧 몬크리프 영국사무변호사회 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니콜 톰슨 영국사무변호사회 국제과장이 배석했고 전우주 미국변호사가 통역을 맡았다.
우선 법률시장 개방으로 영국 로펌들이 한국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법률시장 개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한국과 영국과의 거래가 많아지고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거래에는 변호사가 따르는 법이죠. 양국변호사들에게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영국법을 다루는 대다수 영국 로펌들은 사실 관심이 없고요, 한국진출을 꿈꾸거나 이미 진출한 로펌, 국제법을 주로 다루고 해외에 많은 사무실을 가진 로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죠.”
영국은 누구나 알다시피 20세기 초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두고 수입과 수출, 해상과 무역이 왕성했던 탓에 많은 나라가 영국법을 따른다. 그에 따라 영국 로펌들은 세계 각국에 사무실을 두고 해상, 중재 등에 특히 두각을 드러내며 활동해왔다.
“영국에선 한해 8500명 정도의 변호사가 배출됩니다. 전체 법조인구는 15만명 정도고요. 자체 법률시장이 굉장히 크죠. 영국인들이 분쟁을 즐겨하는 걸까요? 하하.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스쿨을 나온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줄 아는 훈련을 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꼭 변호사 업무만을 하진 않습니다. 많은 영역에서 변호사를 필요로 하고 변호사라는 직함이 아니어도 변호사라는 자격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할 기반으로 삼고 있죠. 20~30년 전 영국에선 변호사가 많이 부족했고 생활 속의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는 걸 사회가 환영했습니다. 변호사가 아니어도 로펌 직원이면 의뢰인 상담은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요. 사무변호사와 법정변호사로 나뉘긴 합니다만, 굳이 전체 과정을 다 밟지 않아도 진출할 수 있는 영역도 많고요.”
그에게선 변호사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 ‘변호사’라는 것은 사람들이 믿고 상의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설명이다. 정부, 군대, 회사 등 변호사 자격자들이 진출할 분야가 많아서 굳이 법정변호사를 고집하는 수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한다.
“영국에선 시민들이 변호사를 위상이 높고 의지할 존재로 여깁니다. 그것이 변호사들에겐 가장 강한 윤리법입니다. 전체를 대표해 변호사의 평판에 금이 가도록 처신해선 안 된다는 강한 의식을 갖고 있죠. 법률구조활동과 윤리, 이것이 영국에서 변호사의 평판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하고 있다 봅니다.”
영국 변호사들에게 윤리법은 특별히 로스쿨 시험이나 과목에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윤리강령 12개 조항도 지난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훈련받는 기간 동안 실무 속에서 윤리성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철저히 받는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윤리시험을 통과해야 변호사시험을 치를 수 있으며 윤리법이 필수수강과목이라고 소개하자 영국에서도 그 문제를 두고 한창 논쟁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처럼 로스쿨 교과목으로 두고 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실무 속에서 체화하자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12개 조항 중 ‘변호사들이 서로 협조해야 한다’ ‘프로페셔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조항을 놓고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프로페셔널한 자세’라는 것은 의뢰인의 돈을 보호해야 한다는 비즈니스마인드를 강조한 것이기에 더욱 논쟁적이었다고. 어느 나라 법조사회이든 고민의 지점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다시 영국 로펌들의 한국행 러시에 대한 질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콩에 사무실을 두면 되지 왜 한국에 사무실을 두고 진출하냐고요? 홍콩은 중국의 한 부분일 뿐이며 한국은 성장하는 시장으로서 독자적 필요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필요하니까 오는 거죠. 영국 로펌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사무실이 많지만 한국에도 내려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그 수는 적지만요.”
영국의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가장 많은 이용률과 더불어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 우리나라에 서울국제중재센터가 설립된다. 서울국제중재센터가 성공하려면 영국을 많이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스콧 회장에게 런던국제중재법원의 성공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믿음이 중요해요. 그런 질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의뢰인들에게 ‘What do you want?’라고 물어야 합니다. 고객의 요구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고 그 변화하는 요구에 충실히 따라가려면 의뢰인과의 소통이 필수적입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소통하고 교류하며 그에 맞추어 변화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어야 성공합니다.”
영국사무변호사회 회장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만났다면 스콧 회장을 그저 인상 좋은 백인 아주머니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선입견 탓일까. 그만큼 우리는 아직 여성 변호사단체장을 가지지 못했다.
“여성 회장이 저만해도 벌써 네 번째인 걸요. 150년 동안 여성 지도자가 없다가 최근 10년 동안에 벌써 네 명의 여성 회장이 배출됐죠. 여자들이 한번 잡기가 어렵지 한번 잡으면 여간해선 내놓지 않는다는 거, 아시겠죠. 하하. 회장임기는 1년인데, 그전에 제1·2부회장을 각각 1년씩 거쳐야 해요. 회장을 맡기 전에 훈련기간이 필요한 거죠. 영국변호사들의 경우 출산휴가는 1년인데 로펌이 격무이다 보니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고 싶어 변호사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고생하고 오랜 훈련기간을 거쳐 겨우 변호사로서 안정감을 얻을 때 포기한다니…. 저는 25년 전부터 로펌을 창업해 경영해 와서 출산휴가의 어려움은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남성변호사들의 경우도 출산휴가를 대부분 가고요. 저는 여성인력의 활용을 위해선 사회, 로펌이 좀 더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능한 인재를 사장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출산휴가와 변호사단체에서의 리더의 지위에 대해 열성적으로 스콧 회장이 말했지만 변호사업무의 특성과 과도한 경쟁이 따르는 로펌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 영국의 경우도 대형 로펌의 파트너들은 남자인 경우가 많음을 시사했다.
한국변호사들에게 영국변호사들과 일을 함께 되면 가장 명심해야 할 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답했다.
“인내심이요. 인내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화적 차이가 어쩔 수 없이 있는 것이니 만큼 개방적인 자세로 그 차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해하게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할 때 오해를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일이란 것 자체가 글로벌한 것이잖아요? 서로 배우면서 일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국사무변호사회에서는 다른 나라 변호사들이 와서 영국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영국에 대해 배우고 공부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변호사들이 많이 참여해서 서로가 배우고 체험하는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희망합니다.”
한국변호사들처럼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변협이 마련한 연수나 포럼, 아카데미에는 신청자가 늘 많다. 너무 진지한 자세로 공부해 강사들이 당혹스러워할 정도다. 미국변호사 자격자도 1000명이 넘는다.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사람들이니 만큼 영국사무변호사회가 마련하는 프로그램 역시 안내만 잘 된다면 지원자가 많을 것 같다. 문제는 영국변호사들도 한국에 와서 배우고,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는 일일 것 같다. 우리도 남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해 한국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고급인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영국 로펌은 규모가 큰 만큼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 큰 특색이다. 수천명의 구성원을 무기로 한 로펌의 매출이 우리나라 전체 법률시장 규모와 맞먹는다. 우리나라도 그런 거대로펌과 경쟁하려면 대형화해야 하는 것일까.
“국제경험과 해외체류 기회가 많을수록 해외시장 진출욕구는 커집니다. 한국변호사들이 일단 국제대회에 많이 참가해볼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있고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대형 로펌이겠지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욱더 인재를 모으게 되고 강해지는 거죠.” 우문에 현답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변호사협회는 영국변호사들의 해외진출을 어떻게 돕고 있을까?
“다른 나라에서 회원들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싶어 하면 우선 그 나라 법체계, 관행 등에 대해 리서치하고 설명해줍니다. 충분한 정보를 주고자 노력하죠. 그런 정보 공유, 홍보에 많이 주력하고 해외진출을 위한 트레이닝, 교육, 연수 기회를 많이 마련합니다. 훈련시켜서 내보내는 거죠. 그리고 오늘 이렇게 제가 대한변협에 온 것처럼 법조지도자들과 만나 그런 훈련기회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교류하고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는 적극적인 자세와 열린 시각을 많이 강조했다. 협회가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많이 고민해온 듯 했다. 옆에서 톰슨 국제과장이 열심히 설명하는 회장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모습도 흐뭇했다.
“영국변호사들은 실무적이고 비즈니스 친화적입니다. 오랜 세월 전 세계를 상대로 법률업무를 해온 노하우가 그대로 전수되어 의뢰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일합니다. 그렇게 전 세계를 상대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한 다음 영국에 돌아와 그 경험을 공유하고요. 이것은 사실 전 세계적으로 영국법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국법을 써보면 굉장히 유연성이 좋고 합리적, 상식적이어서 비즈니스에 적합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분쟁의 골이 깊어져 애초의 계약의 의미를 잃었더라도 영국법으로 정리하다보면 가장 원래 계약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도록 세팅된 것이 영국법이 아닌가 해요.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이라 생각하고요. 한국 변호사들도 분명히 그렇게 될 자질이 있다고 봅니다.”
그의 영국 자랑은 끝이 없었다. 거기다 더해 스콧 회장이 원래 애착을 가지고 있고 자신도 ‘법률구조’가 전공이라고 했던 만큼 영국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물어보자 공식일정이 촉박함을 아쉬워했다. 영국의 법률구조 현황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설명할 수도 있는데 간단하게 정리해야 하는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영국에서 법률구조의 요건은 첫째, 경제적인 필요입니다. 경제상황이 자력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상태임이 분명할 때 법률구조에 나섭니다. 그리고 법적 요건에 맞아야 합니다. 소송의 요건이 돼야 변호사가 나서는 게 당연하죠. 대개의 법무법인들이 따로 프로보노 사업을 하기도 하고 공익 로펌들이 있기도 합니다. 정부지원에도 많이 의지하죠. 내년 4월 경제위기에 따라 정부가 법률구조 지원을 줄이겠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짧은 인터뷰 시간과 통역에 의지하긴 했지만 영국 변호사단체 수장으로서 대한변협과의 교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서로 발전의 계기로 만들어가자는 의지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대화였다.
/ 박신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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