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 ‘즐거운 책읽기’라는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프로그램 중 ‘명사의 서재’라는 코너에 초대받은 동국대 한 교수님이 ‘어린 왕자’ 책을 소개해주신 덕분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을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 와 읽어보니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읽었었나 할 정도로 새로운 느낌으로 와 닿았다.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호에서 왔는데 아마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하여 자기 별을 빠져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던 날 풍경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린 왕자는 별을 떠나던 날 아침 별을 깨끗이 정돈해놓았다. 그리고 불을 뿜는 화산들도 정성스레 잘 쑤셔놓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어린 왕자는 서글픈 마음으로 마지막 바오밥 나무 싹들도 뽑아주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꽃에 물을 주고 둥근 덮개를 씌워주려는 순간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떠나려는 그에게 꽃은 말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용서해줘 부디 행복해지길 바래.’ 어린 왕자는 꽃이 왜 이렇게 조용하고 온순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 꽃이 말했다. ‘그래, 난 너를 사랑해. 넌 도무지 그걸 눈치채지 못하더라. 내 탓이지 뭐.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도 나만큼이나 어리석었어. 부디 행복해….’ 그리고 꽃은 천진난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 우물거리고 있지 마. 짜증나. 떠나기로 했으면 어서 가.’
꽃은 제가 우는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도 자존심 강한 꽃이니까….
어렸을 적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린 왕자가 왜 별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다시 돌아갔는지에 대하여는 생각을 하지 못하면서 읽었던 듯하다. 보아구렁이 그림, 여우, 어린 왕자가 돌아갔다는 것 정도만이 기억 저편에 조각조각 남아있고 간혹 살아오면서 어린 왕자에 대해 언급한 글들을 읽으면서 ‘길들여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에 멈췄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한 편의 아름답고 슬픈 로맨스를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매우 현실적인 로맨스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어린 왕자’일지 모른다고 말한 것일까.
처음 자신이 두고 온 꽃과 똑같은 수많은 꽃을 발견하고는 어린 왕자는 놀라고 분해한다. 자신이 꽃에게 속았다고 느껴진 것이다. 다행히 어린 왕자는 여우를 통하여 서로 길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쁨을 주는 것인지를 배울 행운을 얻었던 덕분에 곧바로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이 소행성 B612호에 남겨두고 온 꽃은 자신이 물을 주고, 덮개를 덮어주고 보살펴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꽃이었던 것이다. 이제 어린 왕자는 서둘러 별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어린 왕자의 이별이 그리 슬픈 일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왕자와 꽃에게는 축복이 되는 이별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꽃과 같이 행동하고, 누군가에게는 어린 왕자와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장담한다. 분명히. 그리고 지금 그리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남편에게 책을 건네며 당신에게 꽃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뜬금없는 나의 말에 남편은 자다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뭐야~?”하며 받아든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정말 못말리는 어른이다, 난.
어린 왕자는 그 별에 정말 잘 돌아갔을까?
어린 왕자가 돌아가니 별은 화산에 망가지지 않고 남아있었을까?
어린 왕자가 돌아가니 꽃은 어린 왕자를 받아주었을까?
어린 왕자가 또 그 별을 떠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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