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종이 서로 상대방이 서로 잘못했다며 싸웠다. 그는 두 여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은 후 한 여종에게 네 말이 옳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다른 여종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역시 네 말도 옳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인이 한 여종의 말도 옳고 다른 여종의 말도 옳다면 누가 잘못했는가? 혹은 한 여종이 옳다면 다른 여종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손님들 역시 부인의 견해에 동의했다. 황희는 부인의 말도 옳다고 하였다.”
청백리로 유명한(실제로는 청렴하지 않았으나 후대에서 씌운 이미지라는 반론이 많지만 아무튼)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 다툼 가운데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법관의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싸우는 과정에서 분명한 잘잘못을 가려내야만 할 것이다. 첨예한 의견의 대립, 사실관계의 대립 속에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직업이고, 법정은 국가에서 만들어준 싸움터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 말은 곧 변호사라는 직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무언가 다툼이 필요한 셈이다.
다툰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게다. 다툰다는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바로 “너도 똑같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뭐 어떤 문화권에서든 싸움 혹은 다툼을 좋아하는 문화가 얼마나 있겠냐마는 교육의 과정 중 무엇인가 다툼이 있을 때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다투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 당사자 모두를 비난하는 문화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툼이 없이 무엇이든 타협과 대화로 풀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인간이 살면서 다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다툼의 장인 ‘소송’이라는 제도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부분들, 혹은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역들이 있고 때론 그 영역들이 겹치거나 심하면 동일한 경우도 있다. 모든 인간이 절대적으로 도덕적이거나 절대적으로 이성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장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다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다투는 법’이 아닐까? 맞은 사람도 똑같은 사람 혹은 같이 싸운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보다는, 왜 맞았고 왜 다투었는지를 명확히 가려내 줄 필요가 있고 그 다툼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그 점을 명확히 인식시켜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 소개한 황희 정승의 일화에는 알려지지 않은 뒷 부분이 숨어있다. 그 뒷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 사람은 상대방의 잘못은 눈여겨 보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절대 모르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두 여종과 부인은 물론 손님들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한다.”
때론 사람들은 자신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지칭하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에 숨어있는 이야기는 아마도 ‘다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거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다변화된 세상에는 다양한 욕구들과 다양한 권리들 그리고 다양한 의무들이 충돌하고 섞여서 살아간다. ‘다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다투어서라도 지켜내야 할 무언가’가 없는 사람이거나 ‘다투어서라도 지켜내야 할 상황’에 마주쳐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다툰다는 행위는 누구도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다툰다는 행위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삶의 하나의 부분과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툼의 상황에서 “너도 똑같아”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왜 다툼이 있었고 누가 잘못을 했는지를 가려주는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가 잘못했다면 무엇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 지적해주고 이해시키려는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네 말도 옳고, 니 말도 옳고, 임자 말도 옳소”라고 했던 황희 정승의 말 속에는 그저 ‘둥글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아마도 법을 공부하는 나같은 이들은 저 말의 뜻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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