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0다20044 판결

이 사건은 원고(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가 방영한 드라마 ‘겨울연가’ ‘황진이’ ‘대장금’ ‘주몽’이 인기를 얻어 국내 수요자나 해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와 관련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피고가 위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유사한 자세, 그들이 착용하였던 것과 유사한 색깔, 스타일의 옷과 목도리, 소품(갑옷, 신선로 등)을 착용한 캐릭터 제품 등 이 사건 각 드라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의상과 소품, 모습, 배경 등으로 꾸민 피고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등 원고들로부터 허락을 받지 아니한 채 피고 제품을 접한 수요자들로 하여금 위 드라마를 직접적으로 연상하도록 하고 그러한 연상으로부터 생겨나는 수요자들의 제품 구매 욕구에 편승하여 피고 제품을 제조·판매한 사안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대상판결은, 위 각 드라마는 위 각 방송사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로서 이들 방송사는 해당 드라마의 명성과 고객흡인력을 이용하여 그에 관한 상품화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타인에게 부여하고 대가를 받는 방식 등으로 영업해 오고 있는바, 이러한 영업을 통하여 원고가 얻는 이익은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최근 판례의 경향을 보면, 저작물성이 없거나 저작권침해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가 주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민법 제750조의 일반 불법행위 법리를 적용하여 손해배상이나 나아가서는 금지청구까지를 명하는 판결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저작권법뿐만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을 비롯한 다른 지적재산권법의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와 같이 개별 지적재산권법에서의 보호요건이나 침해요건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해당 지적재산권법에서는 비침해행위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행위에 대하여 민법상의 일반 불법행위에 따라 침해행위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가 문제로 된다.
일본의 다무라 요시유키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두 가지 대립되는 입장을 ‘민법 자기완성주의’와 ‘지적재산법 중심주의’로 분류하고 있다. ‘민법 자기완성주의’의 입장은 모든 위법성의 문제는 관련되는 개별 지적재산법이 있느냐 여부에 관계없이 민법 제750조에 비추어 판단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적재산법 중심주의’는 개별 지적재산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 불법행위에 의하여 이를 보완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서, 그것이 정의관념에 반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결국 그에 대한 해결은 개별 지적재산권의 입법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 지적재산법 중심주의 입장에 선 대표적 판결로서는 대심원 1914년 7월 4일의 ‘桃中軒雲右衛門’ 판결을 들 수 있다. 이 판결은 개별법 및 특별법인 저작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권리가 없는 경우에는 설사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일반법인 민법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런데 그 후 일본 대심원 1925년 11월 28일의 ‘大學湯’ 판결은, 엄밀한 의미에서 명확하게 권리라고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반인의 법률관념에 비추어 그 침해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초한 구제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법률상 보호를 받아야 할 ‘이익’의 존재는 긍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일본 민법 제709조(우리 민법 제750조에 해당)는 ‘타인의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협소하게 해석하여 구체적인 권리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한 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고 보게 된다면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정의관념에 기초하여 일반적인 법률관념상 그 침해에 대하여 불법행위 성립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법이 보호하여야 할 것에는 ‘권리’뿐만 아니라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도 있는 것이며,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판단되면 특별히 이를 권리로서 규정하고 있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 법리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일본 하급심 판결의 흐름을 살펴보면 지적재산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 일반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가 문제로 된 사건들이 다수 있으나 결론적으로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판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판례에서는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거래와 관련하여 공정한 또는 자유로운 경쟁으로서 허용되는 범위를 현저하게 일탈하여 법적 보호를 받는 영업활동을 침해함으로써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경우에 한정된다거나(동경고등법원 1991. 12. 17. 판결), “공정 또는 자유로운 경쟁원리에 의하여 성립하는 거래사회에 있어서, 현저하게 불공정한 수단을 사용하여 타인의 법적 보호를 받는 영업활동상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한정된다는 설시(동경지방법원 2001. 5. 25. 판결)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개별 지적재산법에서 위법하다고 하지 않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일반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다 적극적으로 언급한 판결도 있다. 동경지방법원 2009년 2월 27일 판결은 편집저작물의 성립을 부정하면서, 이어지는 원고 출판사의 ‘판면권’ 침해 주장에 대하여 “다른 출판사의 판면을 그대로 복사하여 출판물을 제작하는 행위는 출판업에 종사하는 자로서의 도의에 위배되는 것임은 명백하나 법은 그러한 행위도 그것을 반드시 위법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며 저작권 등의 존재를 전제로 일정 범위의 유형에 한하여 위법하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인바, 저작권법에서 위법하다고 하지 않는 행위를 일반 불법행위에 의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우리 판례를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저작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저작권침해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는 설사 그것이 재산적 가치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모방과 자유로운 이용이 허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저작권침해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본 판결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 이용행위가 공정한 거래질서나 자유로운 경쟁으로서 허용되는 범위를 심히 일탈하여 법적 보호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여 일반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판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6. 21. 선고 2007가합16095 판결(확정)은 “일반적으로 홈페이지를 통하여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는 저작권법에 따라 배타적인 권리로 인정되지 않는 한 제3자가 이를 이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유이지만, 부정하게 스스로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거나 또는 정보제공자에게 손해를 줄 목적에 따라 이용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하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타인의 수년간의 연구 성과와 임상경험에 편승하여 부정하게 스스로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원리에 의해 성립하는 거래사회에 있어서 현저하게 불공정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한도를 넘어 원고의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 있는 영업활동상의 이익을 위법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하였다.
그 후 대법원에서도 비록 부정경쟁방지법이 한정적으로 열거하여 규정하고 있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요건 아래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은 인터넷 포털이 제공하는 광고를 임의로 대체하는 광고 서비스의 위법성 여부가 문제로 된 사건에서,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이러한 무단이용 상태가 계속되어 금전배상을 명하는 것만으로는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단이용의 금지로 인하여 보호되는 피해자의 이익과 그로 인한 가해자의 불이익을 비교·교량할 때 피해자의 이익이 더 큰 경우에는 그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대법원 결정은 소유권 등 물권이 침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경쟁행위가 계속되어 금전배상을 명하는 것만으로는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단이용의 금지로 인하여 보호되는 피해자의 이익이 그로 인한 가해자의 불이익보다 클 경우 금지청구권까지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저작물성이 없거나 저작권침해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가 주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민법 제750조의 일반 불법행위 법리를 적용하여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금지청구까지를 인정하는 판결이 종종 나타나고 있으며 대상판결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저작권법상으로는 보호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행위에 대하여 민법상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 있으므로 법리적인 측면만 아니라, 법적 예측가능성 및 법적 안정성 등 법정책적인 면까지를 고려하여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별 지적재산법에서 보호하지 않는 정보는 이른바 ‘공유의 영역(public domain)’에 있는 것으로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근본 원칙에 대한 신뢰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즉,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정보나 아이디어, 표현 등은 설사 그것이 재산적 가치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모방과 이용이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그러한 모방이나 이용행위에 대하여 일반 민법에 따른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 모방 또는 이용행위가 공정한 거래질서 및 자유로운 경쟁질서에 비추어 정당화 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으로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 오승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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