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관련 사건을 맡으면 여러 가지로 착잡한 게 사실이다. ‘1+1=2’처럼 누구라도 명확한 답을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변호인이 보기에 피고인 입장에서 변소할 거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어떤 식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할지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인 상황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을 위하여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법원이 ‘유죄’를 인정해버리면 처음부터 순순히 범행을 인정한 경우에 비해 중형이 선고되는 것은 물론이고 ‘피고인이 뉘우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양형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성폭행 사건의 경우 사실상 공탁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변호인으로서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형사사건에서 ‘공탁’이라고 하는 것은 피해자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회복 및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한 반성의 표시로 피해자를 위하여 법원에 금전을 임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단독행위이다. 즉 공탁의 본질적 성격은, 피해자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위하여 금전을 임치하여 사실상 피해자의 의사가 개입되거나 피해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에서 그와 같이 형사공탁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공탁을 함으로써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일종의 반성 및 뉘우침을 표시하고 일부나마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탁을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특정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등록상 주소 및 연락처 등을 알아야 하는데, 성폭행 사건의 경우 공탁의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내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판부에서는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공탁하지 못하게 하고 사전에 먼저 법원을 통해 피해자의 허락을 받게끔 하고 있다.
이 경우 피해자가 공탁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가해자는 공탁조차도 할 수 없고, 그와 같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공탁을 하게 되면 오히려 양형에 불이익한 사유로 작용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지만, 피고인으로서는 합의가 되지 않았을 경우 공탁이라도 해야 자신이 진정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법원에 알리는 한편 피해자를 위하여 미력하나마 피해 회복에 힘썼다는 이유로 양형 참작사유가 될 것인데, 성폭력 사건의 경우 아예 공탁조차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보니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으면 피고인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정말로 악심을 품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항거불능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성폭행을 한 경우’라면 그와 같이 공탁이 제한되었다고 해도 특별히 억울할 것도 없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각 주장이 다르고 상황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른 경우 가해자가 그와 같이 행위하게 된 경위 등에 참작할만한 정황이 있는 경우라면 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현행과 같이 공탁제를 운영하다 보면 오히려 면식범에 의한 성폭행의 경우 공탁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변호사가 사건을 가린다는 것이 우습지만 여자변호사라는 이유로 이혼사건과 성폭력 사건 등에 대한 의뢰가 들어올 때면 썩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특히 얼마 전에 맡은 강간미수 사건 때문에 많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사건의 경위와 피고인의 변소를 들어보면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판사님들하고 같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공탁마저 제한당하고 보니 변호사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을 정도로 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차라리 상황이 그렇다면, 법원에서는 성폭행 피고인의 경우 공탁을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 같다. 즉, 사건번호와 피해자의 이름만 기재하여 공탁을 할 수 있게 해주면 법원이 우려하는 2차 피해도 예방할 수 있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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