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는 검찰개혁 뭔지 생각해보라”

대통령 후보 세명이 공히 주장하는 검찰개혁, 세부 각론은 다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며 집권 시 대거 수술할 것을 예고한 가운데 2005년 대통령과도 다른 의견을 꿋꿋이 밝히며 사퇴했던 김종빈 전 검찰총장을 만났다.
검찰을 떠난 지 만 7년이 된 그를 만나 바람직한 검찰상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23층. 그의 방에선 봉은사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석가모니 입상이 있었다. 봉은사 신도회장을 맡고 있는 김 변호사는 매일 아침 삼배하고 시작한다고.
“시간 참 빨리 가죠. 벌써 7년이네요. 변호사 한 소감이요? 저는 법정도, 검찰청도 퇴임 이후론 가보질 않았습니다. 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법조삼륜은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갖지만, 또한 각각의 기관이 더욱 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르지요. 법원은 공평을, 검찰은 사회정의를, 변호사는 당사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놓고 생각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변호사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공직을 나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의 역할에 좀 더 힘쓰고 있다. 모교인 고려대의 초빙교수로서 후학양성에 애쓰고, 전국 지방 로스쿨 특강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변호사로서 검찰을 보는 것보단 학문적으로 검찰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일이 더 익숙하다.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우리의 사법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지요. 사법체계는 크게 두 갈래이지 않습니까? 대륙법체계와 영미법체계. 영미법은 당사자주의로 검찰의 역할이 미미하죠. 범죄를 국법 질서의 침해라고 보기보다 개인 대 개인의 위법행위로 보기 때문에 검사는 피해자를 대신해서 소추의 역할만을 하는 소추관으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에 비해 대륙법계는 범죄를 국법질서의 침해로 보아 국가가 실체를 규명해 형벌을 부과하는 체제로서 국가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범죄를 수사하고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기소를 하게 되는 체제입니다. 그러니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는 대륙법 체제를 유지하는 한 특이한 제도가 아닙니다. 즉 대륙법계의 체계를 가진 우리나라의 검찰과 영미법 국가의 검찰을 비교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미국도 사회질서 유지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검찰의 권한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대륙법계의 경우도 당사자 인권 옹호를 위해 영미법상의 형사소송절차를 많이 들여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전 세계가 인권을 옹호하면서도 효율적인 사회질서 유지가 가능하도록 형사사법절차를 역동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추세 속에 대통령 후보들도 다들 사법개혁, 그중에서도 검찰개혁을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개혁에 대한 공언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거창하게 제기되었고 한번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모든 사회의 변화는 제도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제도는 누가 만들고 운영합니까?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이를 운영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어떤 훌륭한 제도도 이 제도를 잘못 운영하면 유명무실해집니다. 그렇게 고쳐야 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검찰제도 속에서도 안대희나 송광수 같은 분들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제대로 역할을 해냈습니다. 검찰개혁보다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검찰수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약속을 하고 그걸 지켜내는 게 우선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기에 본인은 검찰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셨고 어느 정도 이를 관철하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때 검찰이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검찰개혁은 검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치권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검찰개혁을 주장하기에 앞서 국민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고, 환영하는 부분인지도 짚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다들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검 중앙수사부의 경우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수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 정치권이 주 수사대상이고 권력형 부패, 재벌 등 거악을 대상으로 수사하는 곳이다. 그곳이 폐지되면 가장 웃는 자는 누가 될까. 그 대안으로 떠오르는 공직자비리수사처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론적으로 보아도 큰 조직과 역사, 검증 받은 구성원을 가지고도 검찰이 외압에서 자유롭지 못해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빚었는데 새로 만들어진 조직, 적은 구성원으로 출발하는 조직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고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런 논의에 대해 문제가 많다고 느낀다.
“수사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숙련된 기술입니다. 오랫동안 훈련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검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 공수처를 만들어도 이 부분이 난제입니다. 어차피 검찰인력을 데려다 쓰거나 수사기술이 없는 변호사로 구성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검찰총장 퇴임 후 대만 검찰에서 연수를 많이 왔었다고 회고했다. 모든 부분에서 경쟁하며 비슷했던 한국과 대만이 어느 순간 역전되어 대만이 뒤처지게 된 원인의 하나로 사법제도, 특히 검찰이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으로 꼽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열심히 물어보고 배우던 사람들이 대만 대통령이던 천수이볜 총통을 구속하는 것을 보고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고. 우리나라에선 폄하되는 검찰이 다른 나라에선 높이 평가받고 있었다.
이어 그가 검찰총장을 사퇴한 배경에 대해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공식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언급하지 않았었습니다. 공직자가 재직 시의 일을 입에 담는 거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오해가 따르더군요. 천정배 법무장관과 감정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고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단지 송두율 교수부터 시작해 강정구 교수까지 명백히 국가보안법 위반인 사범에 대해 불구속수사하라는 영향력 행사는 부당하다 생각했습니다. 입장 차이였던 거죠. 당시 북한과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분위기였지만 명백한 남북대치상황에서 엄연한 국가보안법위반 사범을 어떻게 경미하게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에서는 검찰이 국가보안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를 바랐지만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므로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하기 전에는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수사를 요청하는 정부의 의견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국정지표의 하나로 삼았고 개정시도가 보수 야당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상황이었죠. 대통령의 입장과 저의 입장, 생각이 다른 상황에서 더 이상 공직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7년 검찰인생을 마무리했다.
그가 검찰총장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으나 화려한 재경 검사로서 엘리트 코스만 밟은 것은 아니었다. 전국 지검, 지청을 안 다녀본 데가 없다고 할 만큼 두루 다녔다. 검찰 상사를 수사하고 기소한 아픈 기억도 가지고 있다. 정말 힘들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맡았다고 말했다. 검사라면 인간적 고뇌와 갈등의 순간을 몇 번이고 맞닥뜨릴 것이다. 숙명이랄까… 검사라면 이겨내야 할 일이었다.
“전국을 떠돌아다녔어요. 전국 지방 곳곳이 제 고향 같아요. 그게 단점만 있는 게 아니에요. 형편을 알고 정을 주면 그곳이 고향이죠. 젊은 검사들일수록 전국 방방곡곡의 문물을 접해봐야 합니다. 편견을 버리게 돼요. 자신이 검찰에서 지도자로 성장하고 싶다면 당연히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향유하는 직업이 있을까요? 검사라면 감내하고 본분을 다해야죠. 돈, 권세, 편안함까지 다 가지는 직업이 있나요? 그걸 욕심 내는 검사가 있어 욕을 먹는 것이겠지만요.”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차분히 말하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다. 화우의 직원들 얘기를 주워들어 보니 누구를 대할 때나 친절하고 다감하시단다. 열심히 말씀하시면서 인터뷰 정리할 때 편안하게 할 방법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성품이 짐작됐다. 사실 검찰생활을 오래하면 성품으로도 나타나게 된다. 너무나 스트레스가 과도한 생활을 오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낸 힘이 궁금해졌다.
“명상을 해요. 가급적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하고 받아도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에너지를 찾아내요. 법조인들이 정말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암 사망도 많고. 종교를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정화하며 내적인 평화를 찾아야 해요.”
명상을 즐기는 그에게 사무실 위치는 금상첨화인 것 같다. 가까이 한강과 멀리로 도봉산까지 보이는 위치라 명상도 잘 될 것 같다. 그러나 변호사 일은 거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방향을 잡아주는 것 정도고, 강의와 봉사활동에 더 매진한다. 인생 30년을 직업에 충실했으니 10년 정도는 사회봉사를 하고 남은 30년은 나름의 계획이 있단다. 사회봉사활동이라고 해서 사회단체에 소속돼 봉사활동을 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동창회, 종교단체, 종친회 등에서 나름의 역할을 성실히 하는 것으로 나름의 봉사라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성의껏 모임의 일을 하는 것. 그는 그것이 소박한 봉사라 여긴다. 아마도 그의 봉사는 주변에 따뜻함을 전하는 일일 거라 생각해본다. 강사료에 연연하지 않고 로스쿨생들에게 그의 경험과 연륜을 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봉사일 터.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주문에는 “지금 젊은이들은 세상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력은 적게 하면서 구하는 것은 많아요. 안 되면 자기 노력부족을 탓하기보다는 사회 탓을 하고요. 기회는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너무 처음부터 향유한 것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교과서처럼 바르게 생활하면 사모님은 무척이나 재미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언제가 고마웠냐고 물어보았다.
“제가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다 소리 없는 내조 덕분이라 생각해요. 법무부 보호국에 근무할 때 KBS의 협조로 청소년 선도영화를 찍기로 하고 장관님께 보고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KBS의 담당국장이 바뀌자 못 해주겠다는 거예요. 야단났죠. 장관님께 못 찍게 됐다고 보고하기는 싫은데 영화는 찍어야겠고. 해서 당시 저의 집 아파트가 4000만원이었는데 3000만원이면 찍겠더군요. 집사람에게 집을 팔자고 했어요. 그런데 선선히 그러라고 하더군요. 믿는 구석이 생기니까 힘이 나서 열심히 추진했고 다행히 영화진흥공사의 협찬으로 영화는 완성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워요.”
‘부부가 닮아간다는 말이 진짜구나’ 감탄하며 들었다. 행여나 젊은 검사들이 이를 집에 가서 전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달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 박신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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