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1. 1. 27. 선고 2009다10249 신용장대금 지급청구

1.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쟁점
1) 피고 A은행(신용장 개설은행)이 수익자를 주식회사 OO로 하여 발행한 이 사건 신용장은 자유매입신용장으로서, 최대 한도금액을 미화 87만1500달러로 하고 분할선적 및 환어음의 분할발행을 허용하고 있으며, 필요한 선적서류로 ‘수하인을 송하인 지시식으로 하여 송하인이 백지배서한 무고장 선적 선하증권’을 요구하였다.
피고 B은행(제1차 매입은행)은 수익자로부터 2005년 10월 7일 수익자가 이 사건 신용장과 관련하여 발행한 어음금액 미화 24만4639.18달러의 환어음 및 선적서류를 매입하였다. 그런데 피고 B은행이 매입한 선적서류 중 선하증권은 수익자 회사의 대표이사 OOO가 운송인인 OO해운주식회사로부터 다른 운송 건으로 회사 내부 보관용으로 받아 두었던 선하증권을 이용하여 발행인의 서명을 임의로 기재하는 등으로 위조한 것으로서, 그 우측 상단에는 OO해운주식회사가 유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기재한 ‘Non-Negotiable’이라는 문언이 기재되어 있는 반면, 그 본문의 송하인란에는 ‘수익자’가, 수하인란에는 송하인 지시식 선하증권임을 나타내는 ‘TO ORDER OF SHIPPER’라고 기재되어 있고, 그 뒷면에는 수익자가 무기명식으로 배서하였다.
한편, 이 사건 신용장에는 ‘매입은행은 신용장 뒷면에 환어음 매입금액을 기재하여야 한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피고 B은행은 이 사건 신용장 원본 뒷면에 자신이 환어음을 매입한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
피고 A은행은 피고 B은행의 위 환어음 및 선적서류의 매입에 기한 신용장대금의 지급 청구에 따라 피고 B은행에게 미화 24만4639.18달러를 지급하였다.
그러나, 수익자는 다시 이 사건 신용장에 기한 환어음 등을 분할 발행하였고, 원고(제2차 매입은행)는 이 사건 신용장 원본 뒷면에 매입사실의 기재가 없어 피고 B은행의 선행 매입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수익자로부터 2005년 10월 17일 어음금액 미화 75만789.78달러의 환어음 및 선적서류를, 2005년 10월 18일 어음금액 미화 10만8019.52달러의 환어음 및 선적서류를 각 매입하였다.
그러나 원고의 신용장대금 지급 청구에 대하여, 개설은행인 피고 A은행은 제1차 매입은행인 피고 B은행에 신용장대금의 일부인 미화 24만4639.18달러를 이미 지급하였기 때문에 신용장 한도금액을 초과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 지급을 전부 거절하였다.
2) 이 사건 신용장에서 요구하는 송하인 지시식 및 백지배서식 선하증권은 송하인이 선하증권 뒷면에 백지배서를 하여 양도하면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운송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는 것으로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는 것인데, 수익자가 위조한 선하증권은 그 수하인란에는 송하인 지시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반면 선하증권의 우측 상단에는 배서금지 또는 유통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인 ‘Non-negotiable’이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어 선하증권의 문면 자체에 상호 모순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 신용장에서 요구하는 조건과는 불일치한다.
한편, 이 사건의 경우, 신용장에서 ‘매입은행은 신용장 뒷면에 환어음 매입금액을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면 일반적인 은행원으로서는 금융기관인 선행 매입은행이 있었다면 매입사실을 기재하였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상당하고, 그 밖에 수익자가 신용장 한도금액을 초과하여 환어음을 발행하였다는 점 및 피고 B은행이 환어음을 선행 매입하였다는 점 등을 원고가 알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자료는 없었다.
결국 피고 A은행은 피고 B은행이 제시하는 선하증권에 신용장조건에 불일치하는 하자가 있음을 과실로 간과하고 피고 B은행에게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것이고, 반면 원고는 과실 없이 선의로 수익자로부터 환어음 등을 매입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이러한 경우 피고 A은행은 피고 B은행에 대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내세워 원고의 신용장대금 지급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2. 판결 요지
국제상업회의소의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제9조 제a항 제iv호, 제10조 제d항, 제14조 제a항 등의 규정을 종합하면, 화환신용장에 의한 거래에서 신용장의 제 조건과 문면상 일치하게 표시된 서류와 상환으로 환어음을 매입한 매입은행이 신용장 개설은행에 대하여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청구하는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설은행은 상환의무를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분할 환어음의 발행이 허용된 신용장거래에서 수익자가 신용장 한도금액을 초과하여 분할 환어음을 발행하고 선적서류 중 일부를 위조하여 서로 다른 은행에게 이를 매도한 경우, 위조된 선적서류를 매입한 선행 매입은행의 신용장대금 청구에 대하여 개설은행이 선적서류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으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던 신용장조건과 불일치하는 하자가 있음을 간과하고 신용장대금을 상환하였다면, 신용장 개설은행은, 후행 매입은행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신용장 한도금액을 초과하여 환어음이 발행되었고 다른 은행이 환어음 일부를 선행하여 매입하였다는 사실 등을 알지 못한 채 신용장의 제 조건과 문면상 일치하게 표시된 서류와 상환으로 환어음 등을 선의로 매입한 후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구하는 것에 대하여 선행 매입은행에게 신용장대금을 상환한 점을 내세워 신용장 한도금액이 초과하였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3. 판례 평석
1) 분할어음발행 및 분할선적의 허용
신용장에서 분할어음발행이나 분할선적을 금지한 경우에는 분할어음발행이나 분할선적이 허용되지 않지만, 신용장에서 분할어음발행이나 분할선적을 금지한다는 문언이 없다면, 분할어음발행이나 분할선적은 허용된다.(제6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제31조 a항) 분할선적(partial shipment; part shipment)은 특정기간동안에 계약물품을 1회에 전부 선적하지 않고 2회 이상 나누어 선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첫째, 계약물품의 수량이나 금액이 많아 매도인이 한꺼번에 제조·생산하여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 둘째, 매수인의 지급능력이나 판매능력 또는 시장상황의 제약으로 매수인이 계약물품의 전량을 한꺼번에 인수하기 어려운 경우, 셋째, 선박의 운송상 사정으로 인해 계약물품의 전량을 한꺼번에 선적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주로 이루어 진다.
한편, 분할어음발행(partial drawing)은 신용장을 한 번에 사용하지 않고 몇 번으로 나누어서 사용함으로써 동일한 신용장 하에서 복수의 어음이 발행되어 사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 분할어음의 발행은 분할선적의 경우에 흔히 일어난다.
2) 선적서류의 매입과 당해 신용장 원본의 제시 여부
이 사건 신용장은 자유매입 신용장이다. 이 경우 매입은행은 선적서류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당해 신용장 원본의 제시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입은행은 우선 당해 신용장이 진정하게 성립하였는지를 검토한 후에 신용장 조건과 제시된 선적서류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또한 매입은행은 선적서류의 매입이 종료하면 당해 신용장의 이면에 매입사실을 기재하여 중복매입을 방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분할선적의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의 신용장에서는 매입은행에게 매입사실을 당해 신용장의 이면에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분할선적의 경우에는 이 사건의 경우처럼 순차적인 매입사실을 신용장에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신용장 원본을 제시받지 않고 한 신용장 매입이 무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해 대법원 2012. 1. 27.선고 2009다93817판결은, ‘제6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 600) 제2조와 제9조 제a항의 규정 내용에 비추어 보면, 매입은 단지 지정은행이 ‘환어음 및/또는 서류’ 자체를 매수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매입을 하면서도 신용장 원본의 제시나 교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매입은행이 수익자로부터 신용장 관련 서류를 매입할 때 신용장 원본을 제시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용장 매입도 여전히 적법·유효하다’고 판시하고 있다(타당한 판시라고 할 수 있다. 매입은행은 자신의 권리로 신용장 원본의 제시를 요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서류의 매입과정에서 매입은행과 수익자의 법률관계, 매입의 의의와 법적 성질, 매입은행에게 매입의무가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하여 상세한 것은 유중원 저, 신용장(상) 제2편 제5장 제1절을 참조할 것).
3) 은행의 서류조사의무와 하자있는 선적서류, 개설은행의 교섭권
이 사건의 경우 매입은행은 제시된 선적서류가 신용장 조건과 일치하는지 여부에 대해 서류조사의무가 있다(UCP 600 제14조. 상세한 것은 전게서 제2편 제6장 참조). 만약 매입은행이 하자있는 서류를 매입하여 개설은행에 제시하면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청구할 때는 개설은행은 신용장 조건의 위반을 이유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UCP 600 제15~16조).
그러나, 개설은행이 제시된 서류에 불일치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개설의뢰인(수입자)에게 그 불일치의 허용여부를 조회하는 것이 보편적인 은행관행이기 때문에, 개설은행은 불일치가 있는 서류의 권리포기의 여부를 그 독자적인 판단으로 개설의뢰인에게 조회할 수 있는 것이다.(UCP 600 제16조 b항)
4) 결어
이 사건의 경우, 우선 제1차 매입은행은 비록 하자있는 서류를 매입하고 또한 신용장의 이면에 1차 매입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그건 제1차 매입은행과 개설은행 간의 문제로서 개설은행이 그러한 하자를 용인하고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이상, 이에 대해 제2차 매입은행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제1차 매입은행과 제2차 매입은행 간에는 어떠한 직접적인 법률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설은행과 제2차 매입은행의 법률관계는 매입은행과 개설은행간 일반적인 법률관계일 뿐이다(상세한 것은 전게서 제2편 제5장 매입은행의 지위 참조). 그래서 제2차 매입은행이 이 사건 신용장 조건과 일치하는 선적서류를 제시하고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청구하면 개설은행은 선적서류에 하자사항이 있다거나, 또는 매입은행이 선적서류의 위조에 가담하였거나 또는 위조 사실을 매입할 당시 알았거나 그와 같이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신용장거래의 독립 추상성 원칙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Fraud Rule의 법리에 따라 지급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Fraud Rule에 관하여 상세한 것은 전게서 제1편 제6장 참조). 이 점이 이 사건 원고(제2 매입은행)와 피고 개설은행 간의 법적 쟁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설은행이 제1차 매입은행에 대해서 하자있는 서류에 대해 신용장대금을 지급하였는지 여부는 직접적인 쟁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개설은행과 제1차 매입은행 간 또는 개설은행과 개설의뢰인 간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유중원 변호사 rjo12@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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