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영어로 ‘system’을 의미하는 이 ‘엘 시스테마’는 37년 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에서 빈민층 청소년을 모아 악기 연주를 가르쳐 오케스트라를 구성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 후 베네수엘라 정부와 세계 각국의 기업, 음악가들의 후원을 받는 음악교육 시스템으로 성장하였다. ‘엘 시스테마’를 통하여 세계적인 음악가가 배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이 거리에 내몰려 범죄에 노출되고 가담하게 되는 것을 막고 그들에게 소속감과 책임감 등을 심어주며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놀라운 효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마약과 폭력 앞에 무방비상태이던 빈민가 어린이들의 손에 악기가 쥐어지고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 그 자체로 놀라운 경험이며, 재능은 있었으나 이를 살릴 기회를 얻지 못하던 유소년들이 엘 시스테마를 통하여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했다는 것은 이 시대가 큰 자산을 얻은 것과 같다.
국내에도 교육청 등이 대학교, 연구소와 연계하여 이런 엘 시스테마의 특장점을 살린 음악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일부 시행을 해 본 지역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만약 ‘엘 시스테마’가 만들어진 배경과 정신 그리고 오랜 기간 각계각층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촘촘하고 탄탄한 교육 과정을 묵과한 채 ‘엘 시스테마’가 가져다 준 결과만을 성급하게 얻고자 한다면, 우리나라에 음악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투입된 예산의 집행과 교육 시행과정에 음악전문가들의 치밀하고 장기적인 검토와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교육 만능풍조라는 현 세태에서도 드러나듯, 학부모들의 조바심과 공포,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교육기관의 잘못된 교육태도,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승리주의, 업적주의 숭배 경향은 음악교육, 전인격적 예술교육을 정착시키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솔직히, 이것이 어찌 음악교육에 한정된 이야기겠는가마는.
얼마 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잠시 가르쳐 줄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지금 배우는 책에서 자신들의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를 내게 설명하며 피아노를 쳐 보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 배우는 곡 말고, 전에 쳤던 곡들 중 좋아하는 곡을 쳐 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진도가 지나간 것’이라며 전에 쳤던 곡 치는 것을 즐겨 하지 않았다. 내가 피아노 책 앞 부분에서 쉽고 재미있어 보이는 곡을 찾아 펼쳐 보이며 연주해 보라고 하였으나, 아이들은 전에 배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치지 못하였고, 어렵사리 연주를 마친 아이들에게 내가 던진 감상은 이러했다. “무슨 화나는 일 있었니? 왜 화내면서 피아노를 쳐?”
사교육기관에서 제시하는 장밋빛 플랜, 즉 6개월 후에는 무슨 곡을 치고, 1년 후에는 어떠한 연주가 가능하다는 계획안은 그저 학부모들의 자기만족을 채우는 미사여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아이가 수년 간 소위 진도를 나가지 못한 채 단 한 곡을 치더라도, 아이가 그 곡의 연주를 통해서 기쁨을 느끼고 훗날 돌이켜볼 때 그 곡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되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징검다리가 되게 한다면 그것으로 음악교육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아이는 음악에 대해 짜증과 스트레스만 남고 부모는 투입 비용 대비 결과물이 없다며 아이에 대하여 불만만 늘어가는 교육, 이것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공교육에서의 음악교육 또한 단발적인 합창, 합주 등의 성과물이 없더라도 좋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기금은 악보, 악기 구입비, 프로그램 운영비에 모두 소진되었고, 학생들의 연주실력은 아직 일천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이를 괘념치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며 그들의 손과 머리, 가슴에 전해지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성취감, 소리의 미적 충격은 향후 저들의 삶에 오래도록 선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히 깔려 있어야만 하는 것이 음악교육이다. 엘시스테마는 이러한 믿음에서 출발하고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음악공교육, 음악사교육 모두에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엘 시스테마가 도입되고 시행되길 간절히 바란다.
 

/ 박지영 변호사 juris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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