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사에 입회하기 위해 의뢰인과 함께 경찰서 수사과로 갔었다. 억울하게 고소를 당한 사건이었다. 무턱대고 형사고소를 해놓고 취소해 줄테니 합의금을 달라는 신종 협박성 범죄 같았다. 고소장의 문장은 그럴 듯했다.
오전 9시의 경찰서 수사과는 조용했다. 칫솔을 들고 오가는 형사도 보였다. 등산용 점퍼를 입은 오십대 초쯤의 형사가 담당이었다. 그의 앞에 의뢰인과 나란히 앉았다.
“바쁘다 보니까 기록을 안 읽어 봤어요. 지금부터 볼테니까 앞에서 기다리세요.”
그는 미안해하지도 않는 당당한 얼굴이었다. 기록을 펼쳐보는 그의 표정은 ‘아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경찰서에서 이첩을 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눈만 기록을 훑어갈 뿐 이해하려는 의도가 없어 보였다.
“여기 서명을 해 준 건 맞아요?”
담당형사가 의뢰인에게 물었다. 누군가 위조한 서류를 가지고 와서 사인해 달라고 해서 의뢰인이 서명한 사건이었다.
“예 맞습니다.”
“그러면 그 위의 사실을 다 인정한 거니까 위조가 맞네요.”
엉뚱하게 법리가 비약이 되고 자백을 유도하는 신문이었다. 어처구니없이 엮으려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기록과 의견서를 제대로 파악하고 물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말했다. 갑자기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내뱉었다.
“수사를 방해하면 언제든지 변호사를 내쫓을 수 있는 대통령령이 제정된 거 아시죠? 한마디만 더 하시면 보냅니다.”
그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형사의 말이 맞았다. 지난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에 대한 대통령령이 제정될 때였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으면 언제든지 변호사를 내쫓을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형사의 허락이 없는 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사방해라는 명분으로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서작성 전에 형사가 먼저 말했다.
“피의자는 지금부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했는데요. 그런데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면 왜 변호사가 옆에 있는 거죠?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있나요?”
조사현장에서 변호사의 입회권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인 나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형사 눈치나 머룩머룩 볼 뿐이었다. 한 일이 있다면 형사가 사인하라는 대로 해서 조서의 신빙성만 높여주었다. 변호를 한 게 아니라 형사만 도와주고 왔다.
지난해 연말 대한변협에서는 대통령령이 국무회의 통과 하루 전에야 밀실에서 입회권이 말살된 줄 알고 임원 몇 명이 총리실을 찾아가 기자실에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법률가 출신 총리는 변협 임원들을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그 이후 부당하게 빼앗긴 변호사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은 없었다. 변호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권리는 하나하나 박탈당하고 있다.
며칠 전 지방의 교도소를 갔다. ‘집사 변호사를 방지하기 위해 선임계 없이 접견하는 것을 금합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교정공무원이 집사 변호사인지를 심판하고 접견을 금지할 수 있었다.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형사소송법상의 절대적 접견권은 사실상 박탈됐다. 의뢰인의 요구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얼마 전 변호사와 사무장이 칼을 맞았다.
변호사들 몇 명이 뭉치기만 해도 핵폭탄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단결하지 못한다. 같은 법조인의 고난에 함께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미 희망이 없는 집단이 아닐까. 
 

/ 엄상익 변호사·변협 공보이사 eomsang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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