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청주 근교에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언덕에 가까운 지인의 집이 있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하얀집은 아니지만 그 언덕이, 그 집이 재미 있습니다. 그 언덕과 그 집의 용마루 이쪽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한강으로 흘러가고, 저쪽으로 떨어지면 금강으로 흘러갑니다.

단지 이쪽 저쪽으로 빗방울의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동풍이 불어 한강으로 흘러갈 빗방울이 금강으로 가 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정처없는 폭풍우가 불어닥쳐 바로 앞에 떨어진 빗방울은 한강으로 갔는데, 바로 그 뒤에 있는 놈은 금강으로 가는 생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 갑자기 돌풍이 불어 두 물방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필연이나 논리보다는 우연이나 직관이 더 많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결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어떤 연예인에 대한 과거의 어떤 사연이 폭로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 연예인은 극심한 비난과 야유에 시달리다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다른 어떤 연예인의 경우에는 폭로된 어떤 사실이 자살한 그 연예인에 대한 것이나 사실상 거의 유사한 것임에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동정과 격려를 받으며 더욱 더 많은 사랑을 얻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그와 같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하였는지 참으로 신비합니다.

자살한 연예인이 왜 나만 억울한 일을 당하느냐고 신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하고 그냥 가슴만 아플 뿐입니다.

어떤 정치인이 있습니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일생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걱정했고, 꾸준히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한 비전을 마련해 왔습니다. 이제는 상당한 경륜도 쌓여 제법 미래도 보이는 것 같아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진정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국민들과 소통을 하려 했고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삶도 충분히 검증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중의 반응이 영 아닙니다. 지지율은 아무리 해도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날 무슨 콘서트를 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대중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콘서트에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콘서트가 일반대중에게 인기가 치솟아 관객 수가 500만을 넘어 1000만을 향한다는 보도도 있어 어떤 정치인도 호기심이 생겨 아무도 몰래 그 콘서트에 가 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그 콘서트라는 것은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주를 하는 것인지 내용도 없어 보이고 전문가적인 기교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관중은 뜨겁게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치인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대중들의 변덕이나 무지를 탓해보고,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여 한탄도 해보고, 너무나 억울하다며 항의도 해보지만 메아리조차 없습니다. 왜 모든 일에 전문가가 필요하고 전문가가 대접받는 세상인데, 정치 쪽에는 전문가라는 말이 오히려 없어져야 하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국가를 경영하려면 인간 사이의 오묘한 이치도 알아야 하고 필요한 경우 좋은 의미에서 권모술수도 필요하고, 조직에 대한 장악을 위한 지본적인 지식이나 테크닉도 필요하고, 국제감각은 글로벌한 이 시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도대체 대중들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원망아닌 원망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어떤 정치인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이고, 대중들은 어떤 사람을 쫓아 다니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대중음악가가 있습니다. 현재 그 인기는 가히 전 지구적이고 그야말로 폭발 지경입니다. 다른 대중음악인이 보니 그 음악의 수준이라는 것이 뭐 그렇고 그렇게 보이고, 가창력이라는 것도 뛰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까지 자신이 발표한 음악이 그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춤이라는 것도 우스꽝스럽고 지나치게 단순하고 도무지 어떤 수준이 없어 보였습니다. 외모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대중은 자신이 아닌 그 어떤 대중음악인만을 좋아하고 열광합니다. 그것도 전지구적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다른 대중 음악인은 너무나 이상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모든 것이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대중을 원망하고 신에게 푸념을 해보지만 그뿐입니다.
어느 날 어떤 정치인은 어떤 대중음악인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연 콘서트에서 수만명의 대중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콘서트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정치인은 제대로 된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연광철이라는 세계적 바리톤 가수가 가는 겨울 나그네길을 떠나기로 하고 쓸쓸한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풀섭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보고 크게 위안을 받았습니다.

갈지자 걸음에 나는 익숙하니 / 아무길로나 가도 그곳이 바로 목적지 / 우리의 기쁨 우리의 고뇌 / 모두 다 도깨비불 장난이지
(슈베르트 ‘겨울나그네길’ 제9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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