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서초등학교 정문 쪽으로 이면 도로가 나있다. 등·하교 시간 이외에는 사람의 왕래가 뜸한 대신 오히려 자동차의 주정차가 많은 곳이다. 수서초등학교 정문의 반대 편에는 높이 5m는 족히 됨직한 방음막이 이 도로를 따라 쭉 서 있다. 이 도로의 길이가 500~600m는 되니까 방음벽의 길이도 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 살풍경한 장벽이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맞은 편에는 분당으로 연결되는 수서 IC가 있어 차량의 소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늦더위로 밤을 설치고 새벽 산책을 나섰다. 새벽이지만 간단 없이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이 길을 걷다가 방음벽 옆으로 강렬한(!) 흰빛을 띠는 꽃들이 간간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크기와 모양새가 백합꽃 같은데 꽃잎은 휠씬 부드럽고 수술이 가늘고 연한다. 줄기가 크고 강인한데다, 잎새도 건장하다. 방음벽 주위로 다가가자 은은한 향기가 배어 왔다.
다가가 꽃 향기를 맡았다.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배어 있는 부드러운 향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시들기 전의 오래된 장미꽃 향기와 약한 레몬 향을 버무린 듯한 향기? 들국화 향기를 10배쯤 희석한 향기? 아니면 갓난아기의 체취?
어린 나이에 아버지(지금은 작고하셨다)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한때 젊은 아가씨가 옆방에 세를 들어 살았지. 수리를 할 일이 있어 그 아가씨 방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근데 그 방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나는 거야. 화장품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잠시 넋을 잃었다. 그후 매일 아침 이 꽃들을 만나러 그곳 이면 도로를 걸었다. 꽃과의 데이트를 즐긴 셈이었다. 꽃은 늦은 여름을 지나 초가을 그리고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활발히 핀 후 서리가 내릴 때까지도 개화했다. 완전히 개화한 꽃 한 송이의 수명은 하루 정도로 오래 가지 않았으나, 꽃 대롱이 올라오면서 한 포기에서 적게는 6~7개, 많게는 20여개의 꽃들이 차례차례 개화하다 보니 거의 20일 이상, 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해 가을은 행복했다! 그 꽃의 이름은 옥잠화였다.
수서를 떠나 거처를 옮기면서 한동안 옥잠화를 보지 못하였다. 테헤란로 중앙선을 가르는 화단에 핀 옥잠화를 차를 타고 가면서 간간이 본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서초동 법원에서 옥잠화를 만났다. 동문, 서문을 지나면 바로 정원처럼 꾸며 놓은 화단이 있는데 그곳에 올 봄 옥잠화를 가득 심어 놓은 모양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서초동 법원 청사에서 흐드러지게 핀 옥잠화를 보는 것은 소스라침에 가까운 놀라움이었다.
평소 서초동 법원 근처는 초등학교 이면 도로에 늘어선 방음벽 이상으로 살풍경한 곳이다. 첨예한 이권 다툼과 깊게 패인 감정의 골 속에서 사람들은 법원을 찾는다. 심각한 표정들, 비수 같은 말다툼, 목이 터진 시위대들… 이 난장판 속에서, 그 뜨거운 올해의 무더위에서, 옥잠화는 흰 봉오리를 수줍게 틔웠고 아름답게 만개했다. 이것은 반전(反轉)이었다. 흰 빛의 아우라를 발하는 여신들이 지상에 내려와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제 곁에서 잠시라도 마음을 비워보시라, 평안을 찾으시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무거운 서류 가방을 들고 시간에 쫓겨 서초동 법원 청사를 드나들다 보니 하얗디 하얀 옥잠화를 보고도 아쉽게 지나치는 수밖에 없었다. 옥잠화의 향기를 맡아 볼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피어 오른 흰 뭉게구름 같은, 옥잠화 꽃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느꼈고 그 향기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서초동 법원 청사를 드나드는 수많은 민원인들의 가슴에도 옥잠화의 순결함이 전해지고 천국의 향기가 배어나기를 기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올해 가을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감사, 서초동! 생큐, 옥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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