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일곱에 나는 갑이었고 싸이는 을이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나는 수습딱지를 갓 뗀 가요담당 기자였고 싸이는 갓 1집을 낸 신인가수였다. 내 나이 스물일곱,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1년 전, 그러니까 2001년도 되겠다.

가요 1진 선배가 들어보라며 음반 하나를 쓱 내밀었다. 들어보고 ‘감’이 오거든 취재해보라는 뜻이다. 취재는 물론 인터뷰를 말한다.

‘Psycho’라는 제목이 붙은 음반은 지지리 촌스런 색감에 뚱딴지처럼 마릴린 먼로가 그려져 있었다. 노래는 가관이었다. ‘나 한순간에 새됐~스.’ 웬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최소한 어깨너머라도 들어는 봤을, 전설의 국민 비속어 ‘조(鳥)됐스’였다. 다른 곡에서 싸이는 또 다른 국민 비속어를 연상시키는 ‘이 10원짜리야’를 외쳐댔다. 비주얼은 한 술 더 떴다.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바른 남자가 물결치는 살집으로 새 흉내를 내며 ’새됐스‘를 외치고 있었다. 때마침 ‘엽기’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엽기 가수’, 그것이 싸이를 가장 점잖게 표현할 수 있는 용어였다.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생짜 신인가수 싸이를 신문사로 불렀다. 요즘은 언감생심이지만, 그때만 해도 언론사는 연예인에게 ‘갑’이었다. 소위 톱스타로 분류되는 이들도 인터뷰를 하러 언론사로 오는 일이 잦았다. 그러니 신인가수 싸이는 냉큼 달려와야 하는 처지였다.

담배연기 자욱한 한국일보 접견실에서(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신인가수 싸이를 만났다. 그런데 어라, 신인 특유의 쭈뼛거림이나 긴장감은 약에 쓸래야 찾아볼 수 없다. 인터뷰를 당하러 온 신인 가수는 신문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궁싯대며 즐거워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식의 억지 춘향 웃음도 없다.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이럴 때는 잠시 헛갈리게 된다. 연예계에 드물지 않은 무개념 사이코일까, 아니면 내공을 살짝 감춘 허허실실의 고수일까? 경험적으로 후자일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눈으로만 봐선 알 수 없다. 손가락으로 쿡 찔러도 보고 요리조리 만져도 봐야 감이 온다. 질문은 나의 힘, 골지르기 한 방이 제격이다.

“소속사에서 살빼고 성형하라고 안 해요?”
대답은 능청스럽기 짝이 없었다.
“에이, 기자님 저 이래봬도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요. 순두부 같은 살이 출렁출렁한 게 귀엽대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퍽이나 그렇겠다. 내가 여자다, 욘석아.’ 그런데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약간씩의 놀라움과 감탄사가 추가되었다. ‘호~ 이것 봐라.’ 신인가수 싸이는 분명히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매력의 이유가 순두부 물살인 건 절대로 아니었지만….

11년이 흘렀고, 싸이는 또다시 신인가수가 되어 미국 NBC 투데이쇼에 불려나갔다. 내가 만났던 똑같은 신인가수 싸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상황을 즐기는 신인가수, 그런 싸이에게 ‘신삥이 딴따라 기자’는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싸이의 놀라운 성공은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다’는 보편적 진리의 실현이다. 멋있는 척, 점잖은 척하는 가식 따윈 즐거움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전히 물살을 흔들어 대며 전혀 강남스타일이 아닌 비주얼로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싸이는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자신이 즐거운 춤을 춘다. 그런 노래와 춤이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한다. 한국 사람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들썩이게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물건을 만들어서 손에 쥐어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보통의 기업들은 ‘고객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내려고 전전긍긍하고 노심초사하며 시장조사를 비롯한 온갖 마케팅 기법들을 다 동원한다. 그런데 하늘같은 고객님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객님들이 안드로메다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즐기는 것을 즐거워하고 내가 편하게 여기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잡스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있지만, 다른 이들은 짚어내지 못한 사람들의 ‘진정한 니즈(needs)’를 끄집어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무언가는 결국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샘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다. 잡스처럼, 그리고 싸이처럼….

11년 전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 무렵 기획사가 ‘기획’해냈던 깎아놓은 듯한 가수들은 대부분 세월과 함께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내 기억 속에 별처럼 많은 별의별 별들 중에서 싸이가 진정한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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