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 강민구 서울고등법원부장판사

책 한 권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인터넷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리한 책이 법조인 법학자 경제학자 IT전문가들의 협업으로 탄생,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법과 IT 양쪽 분야에 관심이 많은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행정부 산업계 인사 40명이 힘을 모아 책을 펴냈다.
‘인터넷, 그 길을 묻다’
단순히 논문들의 조합일 거라 생각하며 펴든 책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IT의 기술력이 집단지성과 결합해 공동작업을 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구글 클라우드로 40명이 한꺼번에 묻고 답하는 것은 물론, 카카오톡에서는 ‘정보법학회’라는 그룹채팅방을 열어 편집위원 8명이 수시로 의견을 교환했다. ‘인터넷, 그 길을 묻다’를 펴낸 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난 16일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저는 그저 조직자, 지휘자의 불과하며 기여도는 그저 0.1%나 될까요? 저술에만 딱 6개월 걸렸습니다. 저의 인복과 인연의 힘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전이면 2~3년 걸려도 다하기 힘든 일을 첨단 기술을 이용해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인재들이 열정을 다해준 결과에 감사합니다.”
서울고등법원 신관청사 고등부장실은 예전보다 많이 비좁았다. 그의 책상에는 노트북 2대와 데스크탑 컴퓨터 1대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소파 앞의 탁자에는 다기, 차도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가정법원이 옮겨가고 4층에서 6층으로 이사하며 짐을 대폭 정리해 이 정도라고 한다. 그가 손수 경남 하동에서 덖음과 유념(녹차 잎을 손으로 비비는 과정) 작업을 한 녹차를 마시니 그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엔 다른 녹차와 별로 다른 점을 못 느꼈는데 계속 마실수록 깊은 맛이 우러났다. 세련된 가공업자의 맛이 아닌 정직하고 순수한 녹차 그대로의 맛. 한가운데 돌진해오는 직구를 맛보는 기분이다.
“싸이의 성공에서 배워야 해요. 그의 음악에 예술성이 있다 해도 ‘유튜브’라는 획기적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한 론칭이 없었다면 전 세계적 히트가 가능했을까요? 단순명료한 ‘말춤’에 감동하도록 만든 기반은 인터넷입니다. 우리가 규제 일변도로 우리 시장에서나 통하는 방식으로 인터넷을 대하면 그런 성공은 나올 수 없습니다. 기존 잣대로 인터넷에 잘 맞지 않는 규제정책을 쓰다간 고립화된 IT 산업계의 ‘갈라파고스섬’이 돼버립니다. 당장은 글로벌 표준(스탠다드)이 손해인 것 같아도 결과적으론 이득이 됩니다. 삼성 LG 팬택 등이 휴대전화 단말기의 성공에 도취되어 WIPI 방식을 고집, 아이폰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이유가 도입 순간 우리 시장이 먹힐 것을 두려워해서였죠. IT 강국이라면서 아이폰이 들어온 게 우리나라가 85번째였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됐나요? 스마트폰의 시작은 늦었지만 세계를 상대로 분기당 수십조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인터넷은 자유로움, 그 자체가 이상(理想)입니다. 보호를 명분으로 족쇄를 채우는 일은 좀 그만했으면 해요. 국경 없는 인터넷에서 국가가 다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도태가 시작되는 겁니다.”
강민구 부장판사의 나이는 54세. 그렇게 인터넷이 자유자재일 나이대가 아니다. 우연히 접한 신세계는 그를 열린 사고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도록 만들었고 인터넷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도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차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원두를 직접 갈아 내려주기도 하고 얼그레이 홍차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인터넷에 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군법무관 교육을 마치고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갔어요. 그때가 1985년인데 중형서버에 연결된 단말기를 처음 만져볼 수 있었죠. 이게 웬 도깨비 방망이인가 했어요. 전산장교 수십명이 있었으니 파스칼, 포트란 같은 소스언어부터 배웠어요. 전역 후에는 판사 초임 때부터 사비로 XT 조립컴퓨터를 사서 사용했습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거죠. 교통사고 호봉승급 차트를 만들려면 세 사람이 계산, 검산을 하고 2~3일이 걸리는 게 보통인데 로터스1-2-3를 썼더니 20분 만에 해결됐죠. 그걸 본 의정부지원의 배석판사들부터 다들 컴퓨터를 자비로 사들였죠. 하하.”
그의 이런 컴퓨터 실력은 1997~1998년 법원도서관의 ‘종합법률정보시스템 개발’로 이어졌다. 현재 판사들이 쓰는 법률 DB 프로그램이 이 프로그램의 버전업 판이다. 2000년 미국 국립주법원행정센터(NCSC) ‘사법정보화특별과정’을 연수한 후 문익점의 심정으로 귀국보고서로 썼다는 ‘21세기 사법업무 정보화의 방향과 과제’(250쪽 분량)는 오늘의 사법업무전산화의 기반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2003년에 쓴 ‘함께하는 법정’은 법서로는 드물게 CD가 첨부되어 있다. 이 책은 그 후 2005년 8명이 팀이 되어 쓴 ‘교통·산재 손해배상실무’의 기반이 되었다. 그에게 이렇게 판사들이 판례부터 사법업무 프로그램, 관련 저술까지 다해버리니 민간 기업이 할 일이 없다고 어거지를 써보았다.
“사실 그렇죠. 그런데 민간기업이 2만명 남짓하는 법률시장을 바라보고 연구하고 투자할 여력이 될까요? 판례가공만 해도 법률시장 수요가 10만은 돼야 민간투자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법서출판시장도 다 죽어가는 마당에 적자누적을 뻔히 예상하며 투자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법률문화와 그에 부수하는 출판, 인터넷 등이 발전하려면 법률시장 규모가 커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통일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강 부장판사는 어떻게 급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현행성 유지’라 불리는 이 압박을 어떻게 이겨내는 것일까?
“예전에는 컴퓨터잡지가 많았어요. 그런 잡지들을 6개월마다 모아 광고나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분야별로 정렬하고 전체 페이지 번호를 하단에 수기로 매긴 후 그 앞에다 목차를 추려내 붙이면 훌륭한 컴퓨터 관련 최신 참고서적이 돼요. 그걸 고시공부하듯 다음 분기동안 틈만 나면 5회독 이상 하는 겁니다. 그렇게 15년을 해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니 갖가지 오해를 하시던데 보시다시피 3대의 컴퓨터를 쓰고 갖가지 프로그램들을 활용하니 효율성이 높지요. 결국, 호기심, 탐구심, 열정의 문제로 귀착되지요.”
강 부장판사는 최근 힘든 일을 많이 겪고 있다. 어머니와 장모님의 병환이 깊어 ‘생노병사’의 인연법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 1072쪽에 이르는 책을 펴내고 유럽연수를 다녀오고 대법원 국제법률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했다. 업무강도 높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하는 와중에 해낸 일이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주말 청계산 새벽등산과 108배, 소식(小食) 덕분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법조인들이 강 부장판사를 따라 108배를 해서 효험을 얻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는 일정에 힘이 들면 역으로 배터리 충전하는 기분으로 300배, 400배를 해서 이겨낸다고. 시중에는 108배를 자동으로 세어주는 무료 스마트폰 어플까지 나와 있다고 보여주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정보법학회와 ‘인터넷, 그 길을 묻다’ 이야기로 들어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8장 ‘인터넷의 미래’ 장의 수준과 집필방식입니다. 제가 정보법학회 회장 자격으로 지난해 여름, 구글 본사를 비롯하여 페이스북 트위터 이베이 징가 등의 본사를 방문해 설명을 들었던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만약 40명의 필자가 ‘오프라인, 실제 공간에서 만나 토론하면 어떨까요?’ ‘젊은 후배가 선배의 의견에 반대하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10년 후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일까요?’ 등 13개의 질문을 40명에게 구글 문서도구(구글독스) 양식문서 링크주소로 보내고 그들이 답변을 하면 저는 앉아서 구글이 질문별로 자동 분류한 답변들을 동시에 보는 것이지요. 그것을 취합해 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은 원고에 대한 윤독, 주석, 반대 의견이 자유로이 오가고 그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수준차가 있는 필자들이 상향평준화할 수 있었다는 데 자부심이 있고 참여한 40명의 필진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전문가로 검증받는 과정이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글이 부담스러우시면 1장 ‘인터넷을 논하라’와 8장 ‘인터넷의 미래’를 읽으시고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으시면 됩니다. 관련 논문들도 실록을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학회 16년간의 발표자와 논제를 모두 정리해두었습니다.”
6개월 집필의 막바지에 인터넷 실명제 위헌결정이 났다. 책 곳곳에 그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데 다 수정해야 했다. 윤종수 부장판사가 하룻밤 동안 ‘찾아바꾸기 기능’을 사용, 전부 수정했다. 이런 것이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해당 분야 최고전문가가 참고도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A4용지 10장 분량으로 요약, 해당 주제의 장과 절을 찾아 읽으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최종 원고 넘어가기 전날 밤 당초 계약한 출판사에서 ‘어렵겠다’는 연락을 받아 출판사를 바꾸기도 하고 ‘인터넷의 미래’ 부분의 영문번역을 받아보니 도저히 그냥 실을 수 없어 다시 번역을 하기도 했다.
너무 유려한 책 표지, 멋진 제목은 도대체 누구 작품이냐고, 도저히 공무원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추궁하자 표지는 변호사 영역 총무이사인 김상순 변호사가 4시간을 전문디자이너 옆에 앉아 고심한 작품이라고. ‘인터넷, 그 길을 묻다’라는 멋진 제목은 남현 판사가, ‘The Internet at the Crossroads’이라는 영문제목은 이기리 판사가 지었고 전문가에 맡겼다가 도저히 안돼서 새로 번역을 한 일은 함석천 부장판사, 이기리 판사, 정재훈 변호사, 최우석 변호사, KISDI의 전주용 박사가 자원봉사로 맡아주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책이 나오니 그 반향은 기대 이상으로 컸다. IT 업계 관계자들은 가슴에 맺힌 멍울이 풀리는 느낌이라고 전해왔다. 규제 위주, 인·허가만능주의에 그들은 한이 맺혀있다는 것을 느꼈단다.
정보법학회는 1996년에 만들어져 초대회장은 황찬현 서울가정법원장이 맡았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최성준 춘천지방법원장, 방석호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전 KISDI원장)가 공동회장을, 강민구 부장판사는 김병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3대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제가 힘겹지만 이런 책을 만들도록 힘을 보태고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제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로스쿨생들, 사법연수생들, 청년변호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인터넷의 세계를 정부가 다 관리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많은 법조인력으로 재판단계 이전부터 자율적 조정, 화해 등 자율규제를 하고 있어요. 로스쿨을 나온 훌륭한 자원이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면 무궁무진한 미래 먹거리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희망을 가지라고.”
어떤 주제를 시작해도 한 시간 이상은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강민구 부장판사지만 가장 목소리를 높여 말한 부분은 청년변호사, 법조인의 미래 이야기였다. 송무만으로는 급증한 법조인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은 공통된 인식이고, 훌륭한 인적자원을 어디에 배치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국가적 과제임에도 너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것은 모든 법조인의 공통된 생각인데 강 부장판사 역시 이를 강조했다. 이 이야기도 결국 책 이야기로 귀결되긴 했다. 8장 ‘인터넷의 미래’를 꼼꼼히 읽으면 미래 먹거리가 보일 거라고.
강 부장판사처럼 페이스북에다 여러 이야기를 하는 법관을 곱게 보지 않는 시각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최근에 김후곤 대검과장(부장검사)이 페이스북에서 검찰에 대해 잘못쓴 기사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 정정보도가 되는 사례를 봤어요. 사건당사자들이 법관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법관들이 ‘사법제도’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 많아진다면 오해가 좀 풀리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김 부장검사처럼 적극적으로 사실을 설명하고 정의감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주변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고 그게 번져나가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스마트폰이 3000만대라는군요. 움직이는 PC와 몰래카메라, 비밀녹음기 3000만대가 이용하기에 따라 선업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악행의 출발이 되기도 합니다. 사법부 구성원 한분 한분이 소통에 힘쓰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데 활용한다면 신뢰받는 사법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터넷은 그저 도구일 뿐 사람이 활용하는 바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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