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로 국선전담변호사를 정리하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 민음사에 들어가 5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편집자로 첫 직장 생활을 하였고, 느닷없는 고시 공부로 변호사가 되어 국선전담변호사로 또 다시 5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늦은 나이에 고시 공부를 시작한 탓에 이미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문득 5년이란 시간이 당혹스럽다. 난 그 5년 동안 둘째를 얻었고, 1400여건의 국선사건을 처리했으며, 그 정도 수의 피고인을 만났고, 그 이상의 재판에서 변론을 하였다. 국선전담변호사는 나에게 신참 변호사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의 형사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경험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올 정도의 매너리즘에 빠졌기에 그 자리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형사 사건을 5년 정도 처리하다보면 이제는 사건을 보면 그 결과가 보인다. 그 결과를 잘 예견할 수 없었던 신참 때는 이것저것 다해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예상되는 결과에 따라 운신의 폭이 정해진다. 의견서를 쓰는 것도, 유무죄를 다투는 것도. 대부분 유무죄를 다퉈봤자 별 승산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예전에는 피고인의 말을 들어보고 타당하다는 판단이 서면 열심히도 재판을 했었다.
이제는 피고인의 주장이 백번 옳아 보여도 재판부가 그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 알기에 그렇게 무식하게 재판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내가 빠진 매너리즘이다. 국선전담변호사니까 재판부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도 나의 매너리즘을 조장했다. 난 피고인을 위한 변호사가 아니라 재판부를 위한 변호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피고인에게 미안하다. 이런 변호사가 국선전담을 하고 있다는 것이.
국선전담변호사는 2년마다 재위촉 절차를 밟고 6년이 끝나면 신규 지원자와 동등한 자격에서 다시 서류전형, 면접 등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올 2월에 처음으로 6년의 임기가 끝난 국선전담변호사들이 새로이 시험을 치렀는데 그 결과는 대다수의 탈락이었다.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기존의 국선전담변호사들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 그 제도를 계속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하면서 기존의 국선전담변호사들을 대거 탈락시킨 이유는 뭘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국선전담변호사가 전속되어 있는 재판부에서 1년에 2번 그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고 그 평가가 재위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탈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전속 재판부와의 관계가 원활해야 하지 않을까. 재판부는 나에게 명시적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제도 때문에 나는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된 것이다.
재판의 묘미는 흔치는 않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증거가 보여주는 방향과 피고인의 진술이 전혀 다르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을 믿고 잠시 ‘똘아이’가 되어 보는 도전이 필요하다. 너무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면 그런 도전을 할 수가 없다. 나의 매너리즘은 그동안 갈고 닦아온 엄청난 협상 기술을 동원하여 자꾸 피고인을 설득시키려고 한다. 그 결과 도전 가능성은 제로점을 향해 수렴하고 있다. 진짜 그만둘 때가 된 것이다.
2년 전인가 어떤 신참변호사가 무죄를 다투고 있는 나에게 피고인 말을 믿느냐면서 조소의 눈길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난 신참 변호사가 그런 식의 표현을 쓰는 것에 화가 나서 본의 아니게 “난 내 피고인을 사랑한다”라고 응수한 적이 있었다.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전과자의 말을 믿느냐라고 하다니 그것도 신참이. 결국 그 사건에서 무죄가 나왔고 나와 함께 변론을 한 그 신참변호사의 피고인도 무죄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도전을 하지 않는 나는 그 신참변호사와 다를 바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는 조금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맘껏 ‘똘아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더 중요한 이유는 요즘 변호사 업황이 수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위촉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그 자리를 뜨게 되어 여러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크다.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려고 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보니 나의 빈자리는 그다지 크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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