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일까?
처음엔 무조건 똑똑한 변호사라 생각했다. 법적인 지식이 해박하고 최신 판례까지 업데이트되어 있고 그래서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하는 변호사 말이다.
내게 그게 잘못된 생각임을 처음 가르쳐 준 것은 P여사다. P여사는 내가 사건에 관여하기 전까지 반 년 정도 합의를 위해 오랜 시간 합의서 문구 변경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그만 중소기업을 하던 남편이 위암 선고를 받아 세상을 떠나자, 남편이 가지고 있던 회사지분과 채권채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업자들이 P여사와 대립을 하게 되었다. 이 동업자들이란 사실 P여사의 남편이 창업을 하면서 데리고 온 전(前) 직장 부하직원들로, 남편 덕을 많이 보았다면 본 자들이었다. 그들이 보낸 합의서는 P여사 눈에는 모두 배은망덕하고 음흉하기만 한 것이었다. P여사는 그들이 합의서 문구, 아니 자구 하나만 바꾸어도 검은 의도를 의심하며 불안에 떨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P여사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피로감을 쉽게 느끼고 예민한 상태였다. 나는 반 년 이상 왔다갔다 한 합의서의 역사를 하루를 들여 일별했다. 수십 번도 더 수정된 합의서는 내용상 큰 쟁점이랄 것도 없었다. 쟁점이라고 해야 지분 정리대가를 전부 현금으로 받을지 일부 현물로 받을지, 일시불로 받을지 분할로 받을지 등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지분 정리대가의 지급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여부에 있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동업자들이 부동산에 지분정리대가 상당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합의가 되었다.
P여사는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면 분할로 받더라도 합의서에 날인을 하겠다고 했다. 합의를 위해 상대방 대리인의 사무실로 갔다. 상대방은 합의서를 공증하고 날인을 한 후 상대방 대리인이 근저당권을 설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P여사는 근저당권 설정을 한 후에 합의서에 날인을 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상대방 대리인도 못 믿겠다는 거다. 합의서가 곧 근저당설정계약이기도 하여 이를 공증하여야 등기가 가능한데, P여사는 그런 순서로는 일을 볼 수 없겠다고 끝까지 불안해 해 합의가 무산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합의서에 날인하고 공증해서 상대방 대리인에게 주고, P여사와 함께 상대방 대리인이 등기소에 가서 근저당권설정을 하는 길에 동행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P여사도 합의서에 날인을 하였다. 결국 나는 그날 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을 뒤로한 채, P여사를 모시고 지방등기소로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왕복 5시간 정도 소요된 이 출장으로 이 사건은 종결되었고, 왕복 5시간 차 안에서 나눈 대화로 나는 P여사와 친구가 되었다. P여사는 남편과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아 키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P여사는 나의 인생선배가 되어 있었다.
출장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 감사하다며 한참을 손을 꼭 잡는 P여사와 헤어지면서는 ‘사랑은 발로 하는 거야’ 라는 격언을 만들어내고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합의가 성사될 때 받기로 한 성공보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명절 때마다 선물을 꼭꼭 챙겨 보내주시는 P여사님! 얼마 전에는 “이제 그만 챙겨주셔도 된다”고 문자를 드렸더니, “부담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만난 따뜻함이었어요”라는 감동의 회신을 주셨다. 아! 변호사하는 맛이란 이런 것이다.
내게 좋은 변호사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준 나의 모든 P여사들에게 감사하며, 나는 변호사하면서 만나는 모든 고객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먹고 일을 하기 시작하고는 슬럼프도 없고 재미없고 지루한 일도 없어졌으며 사업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가속화된 경쟁에 시장개방까지 겹쳐 분위기 사뭇 험난해진 법률시장에 갓 진입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변호사업은 서비스산업이고, 서비스산업의 기본에 충실할 때 고객이 만족하고 감동받고 감사하고, 그대들의 사업도 번창하고 인생도 신나고 행복할 것이라는 이 말을 꼭!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