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다 함께 기뻐함’의 물결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2002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환호성은 우리 모두를 감동하게 하였지만 이제는 흘러간 옛 이야기일 뿐이다.
환희심이 메말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자만과 질투와 인색함이 우리 사회 도처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꼽으라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 갈등이 그 하나이고, 가치관의 갈등이 그 둘이고, 구조적 갈등이 그 셋이다.
이런 갈등의 대표적 사례를 살펴보자. 주민복지와 관련된 화장장 또는 쓰레기 소각장 설치의 문제는 이해관계의 갈등의 본보기이다. 보전과 개발에 관련된 천성산 터널공사와 새만금 간척지사업, 헌법 가치와 관련된 건국 후의 과거사 인식 문제, 안보·평화와 관련된 제주강정해군기지 문제 등은 전형적인 가치관의 갈등 사례이다. 끝으로 호주제 또는 간통죄의 폐지 문제는 구조적 갈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갈등 발생의 배경에는 성별, 신분, 연령, 학력, 국적, 문화 등의 차이일 수도 있다. 특히 생리적인 욕구, 각자의 느낌이나 인식 또는 지각의 차이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쓰는 속담 중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에 가려 대상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학습, 경험, 기억 등의 과보심에 따라 형성된 자아의식에 상응하는 수준의 색안경을 끼고 살고 있다.
예를 들면, 붉은 빛이 들어간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수목이 붉은 빛을 띠고 사람의 얼굴도 붉게 보인다.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일수사견(一水四見)’으로 표현한다.
즉 물(水)이라는 같은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천상의 존재들은 보석으로 장식된 연못으로, 인간은 물로, 아귀는 피(血)로, 물고기는 사는 집으로 본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똑같은 대상도 보는 자의 마음에 따라 이와 같이 전혀 달리 보인다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화에 비례하여 갈등의 양상도 다양화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09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0개국 중 네 번째로 높은 편이며 갈등으로 인한 사회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사회갈등이 10년 전보다 더욱 심각해졌다고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큰 문제는 갈등의 심층구조에 있다. 갈등은 그 당사자들로 하여금 분노, 불안, 두려움, 수치심 같은 정서적인 감정, 느낌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느낌과 감정은 인색과 질투와 자만심으로 증폭되면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과 대상을 보고 저울질하는 ‘사량분별심’과 짝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인간관계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독(毒)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를 선용(善用)하면 갈등의 뿌리인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느낌과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과의 평화로운 대화를 유지시키는 방법은 소통과 공감이다. 나와 남이 서로 공감해야 생각과 견해의 다름과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공유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판단의 기준이 남들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을 하지만, 우리가 연기적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을 하나로 융합하여 기쁨이 넘치는 사회 내지 살맛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소통은 이해가 충돌하고, 견해의 다양성이 살아있는 민주적인 제도를 더 잘 작동하기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관료사회 또는 삼각형의 기업조직은 소통과 배려를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소통과 공감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정서적 교감을 공유하고, 편견에서 벗어나 갈등 해결에 필수적 전제인 상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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