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0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위헌 결정이 있은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작위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정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선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분쟁 절차에 나아가야 하고, 그러한 외교적 해결의 노력이 소진된 경우 이를 중재에 회부하여 한다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그동안 정부가 청구권 해석을 둘러싼 분쟁 해결 절차를 나아가지 않은 부작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중대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였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통상부는 2011년 9월과 11월 두 차례 일본 정부에 양자협의를 위한 외교 서한만을 전달하였을 뿐 아직까지 중재절차로 나아가야 할 정부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참다못한 할머니들과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에서는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헌재 결정 이행을 촉구하는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하여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교적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될 시점에 중재절차로 나아갈 것인바, 아직 외교적 경로를 통한 해결의 노력이 소진되지 않았다고 본다는 답답한 답변을 보내왔다. 또한 강제적인 중재위원회 구성이 어렵기 때문에 전략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외교적 노력을 다하라는 취지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보이라는 것이고, 그 방법으로 청구권협정이 예정하고 있는 국제중재라는 사법적 절차를 이행하라는 의미였다. 비록 강제적 중재위원회의 구성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으나 중재절차를 통한 분쟁해결절차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다. 중재위원회 구성단계에서 중단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일본이 그토록 떠받들고 있는 한일청구권 협정 위반의 상태가 지속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외교부에서는 외부자문위원을 포함한 TF팀을 만들고 차후의 절차의 이행을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나 변협 대표로 참여한 최봉태 일제 피해자 인권특위 위원장은 이번 달 사임했다. 식물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작위의무를 이행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가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들과 변호사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의 결과였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그 소중한 불씨를 살리지 못하고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지원위원회’의 올 연말 폐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원위원회가 폐지되면 강제동원 조사업무와 피해자 지원 업무는 모두 중단되고 접수받은 피해지원 신청도 심사하지 못하고 종료된다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지난 5월에 있었던 일본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의 일제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 이후의 국민적 관심과 피해자들의 요구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이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을 역사적 맥락에서 잘 이해하고 그 취지를 살려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외면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위원회 폐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지원하는 기구의 상설화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 정부가 이렇게 미적대고 헛발질을 하고 있는 지난 1년 동안,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는 2011년 12월 14일로 1000회를 훌쩍 넘어섰고 그 사이에 9명이나 저 세상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단 60명의 할머니들만이 생존해 계신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 되어버린 절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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