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거짓 난무하는 법정에서 진실 가린 안개를 걷어내는 직업”

대한변협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헌법소송아카데미를 시작했다.

60명 선착순 신청은 일찌감치 마감됐고 강사들은 변호사들의 뜨거운 열기에 만족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창설된 지 24년이 됐지만 헌법소송을 해본 변호사의 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헌법소송에 대한 관심만은 뜨거웠다. 이를 채워주고 있는 헌법소송아카데미 운영위원회 위원장 이공현 변호사를 이번호 ‘변협이 만난 사람’으로 정했다. 이공현 변호사는 지난 3월 헌법재판소 재판관에서 퇴임했다.

“변호사 한 지 1년 6개월인데요, 아휴 변호사를 안 했으면 어쩔뻔 했는지. 변호사를 해봐야 진정한 법조인이라고 생각해요. 판사 업무란 한번 걸러지고 서면화한 이미 죽어버린 걸 들여다보는 꼴인데 의뢰인을 직접 상담하고 법정 나가보니 정말 다릅디다. 사건이 살아있는 거예요. 지평지성은 또 젊은 변호사가 많아서 얼마나 생기 있고 좋은지 몰라. 정부미 40년 먹다 변호사를 하니 얼마나 좋은지. 지난해랑 올해 회사에서 하는 신입변호사 교육프로그램에도 꼬박꼬박 나가서 교육받아요.”

이런, 후배들은 얼마나 힘들까? 헌법재판소 재판관 앞에서 신입 변호사 교육을 시키려면. 2년차 교육에 나가선 1년차 교육과 차별화하라고 지적했다니 고생 좀 하겠다.

사법연수원 제자였던 강 성·양윤태 지평지성 대표의 권유로 법무법인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평지성은 새로 들어온 변호사들에게 5개월간 주말마다 지평지성이 걸어온 길 등을 교육하는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결속력도 높아지고 송무와 관련해서도 배우는 게 많다고. 이공현 변호사도 금융·회사 파트와 함께 신입 교육을 받았고 2년차 교육까지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원로변호사가 직접 법정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 후배법관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변호사는 응당 법정에 서야한다는 의견이다.

“음… 제가 법정에 나가 경의를 표하는 것은 후배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심판기구, 법원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저는 법정에서 최선의 예의를 다합니다. 법정에 서 보고 느끼는 건데 공판중심주의는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증인을 심문해보면 진술태도, 눈빛, 몸가짐에서 수천가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서면만 봐 가지곤 알 수 없어요. 기록을 너무 믿어선 안 돼요. 사실 거짓이 난무하는 법정에서 법관이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안개를 거두어내는 게 변호사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헌법재판관으로 있을 때 기억나는 사건을 꼽아봐 달라고 부탁했더니 영화 사전검열 위헌사건과 혼인빙자 간음죄 위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헌결정을 꼽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두 당사자가 있는 일반 법원의 판결과는 달리 전 국민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말 신중하고 어려운 결단이 요구된다.

“요즘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은 정말 크게 발전했습니다. 저는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을 없앤 헌재의 결정이 오늘날 우리 영화 산업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비디오물 등급보류분류제도를 사전검열로 보아 위헌결정을 했었죠.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에선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경우는 우리나라 운전문화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봅니다. 종전에는 중상해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형사처벌을 면제해줬습니다. 운전자 입장에선 종전보다 주의의무가 부과된 셈이죠.”

종합보험만 가입하면 형사처벌을 면해주니 평생의 장애를 입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법조항을 없애는 것은 헌재가 아니면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 맘만 먹으면 시정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겠으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자동차회사, 보험회사, 택시 노조, 버스·트럭 운송조합 등 영향력 있는 단체들과 그에 수반해 움직이는 언론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의 시정을 가로막는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정치세력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다투다 보면 현상유지가 최상인 경우가 많다.

민의의 대변자,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만든 법을 선출되지도 않은 헌법재판관 9명이 없애버린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나치의 만행도 국민 대다수의 절대지지 속에 이뤄졌다. 전후 독일이 헌법재판소를 만들고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삼은 이유다. 권력을 제어할 판단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낸 헌법재판소이고 하나하나의 결정이 그 존재이유를 보여준다 하겠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위헌의견을, 간통에는 합헌의견을 내셨죠. 상호모순이라는 비판도 받으셨습니다.”
“그게 왜 모순된다는 건지, 당최. 혼인빙자간음죄 조문 한번 읽어보세요. 진짜 웃기지 않아요? 아직도 이런 조문이 있었나 싶더군요. 사실 뭐 법원에 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적용해 재판해왔습니다만 헌법재판관이 되고서 헌법마인드를 가지고 읽어보니 어이없더군요.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이 없는 여성과’라니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디 있으며 음행의 상습이 있으면 보호대상이 안 된다는 건가요? 어느 만큼이 상습인건가요? 시대착오적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간통죄는 자기 약속에 대한 이행을 강제하는 것으로 다른 문제 아닌가요? 가정의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확실히 다른 것이고 단순비교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사회의 법이 만들어지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법물신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이 잘못돼서 그런 양 걸핏하면 법을 만들자, 고치자 하는 것이 정말 문제라는 것. 있는 법을 잘 지키고 헌법과 법률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준들이 잘 지켜졌으면 싶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기업체의 자문을 해주면서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 것. 법률, 규칙, 고시, 규정이 있어서 “절차와 형식을 잘 지키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정리해주어야 하는데 너무 예측 불가능한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 것.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는 사회에 어떻게 신뢰가 싹틀 수 있겠나. 행정청의 지침이 불합리한데도 바로 잡기가 너무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면 자주 낙심하게 된다고. 법치주의는 투명한 절차, 예측가능한 일처리로 서로가 믿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라는 설명.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잖아요. 우리의 국가체제를 설명한 것인데 ‘민주’만 있고 ‘공화국’의 가치는 어디로 갔나요? 공화국이라는 것은 공동선을 찾고 공동가치를 위해 노력하고 양보하는 체제를 말하는 것인데요. 정부, 국민, 사회단체들이 법치주의를 시스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다양한 분야 다양한 가치가 부딪히는 헌법재판소 사건들을 다루다보니 개인적 가치관이 충동했을 때 공동의 가치, 더 우선하는 가치를 고민하고 찾아내는 습관이 배인 듯 했다. 로펌에 들어온 지금도 늘 후배들에게 ‘개인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있겠으나 이를 남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더군다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기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해선 안 되는 것이라 못 박는다.

“법원, 헌법재판소 그리고 로펌에서 후배들을 보시면 어떤가요? 각기 다를 텐데요.”
“법조인은 세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 거의 그래요. 가장 많은 부류가 범생이 스타일. 모범답안대로 사는 사람들이죠. 주어진 일을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머리가 좋아서 법조인이 되긴 했는데 적성에 안 맞아 괴로워하는 부류에요. 세 번째는 일을 즐기는 부류입니다. 법조인이라는 게 좋고 맡은 일이 재밌어서 열성을 다하는 사람들이죠. 일을 시켜보면 첫 번째 그룹은 ‘하지요’라고 답하고 두 번째는 ‘왜 나에게?’라고 말하고 세 번째 부류는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잘 됐어요’합니다. 로스쿨제도가 도입됐으니 앞으로는 그 편차가 더 크겠지요. 법조인도 평생 할 일인데 적성에 맞아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긴 해도 40년간 법관으로 살다 로펌의 변호사로의 변신이 그리 간단치는 않을 거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 하는 1, 2년차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해 졸업했다. 구성원의 하나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내려는 열정이 정말 뜨거워 보인다.

“헌법소송아카데미는 이공현 재판관님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거라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계획하셨나요?”
“아이고, 별말씀을 다. 저는 그저 양 기관 간에 다리를 놓았을 뿐입니다. 로펌에 들어오니 헌법소송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부모임을 만들었어요. 헌법소송이 적법요건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헌법소원의 절반 이상이 각하되기도 하고요. 헌법재판은 안 미치는 곳이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데 비해 헌법소송을 잘 아는 변호사는 소수더군요. 공부모임이 워낙 반응이 좋아 외부에서 참여도 많이 해요. 마침 신영무 협회장님을 만났을 때 말씀드렸더니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하셨고요. 그래서 헌법재판소에 가서 의사를 전하고 상의해서 강사진을 정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거죠. 이번에 잘 돼서 상설화되면 좋겠어요.”

교육장소가 협소해 60명을 한정해 수강신청을 받았는데 호응이 높았다. 변호사들이 가까운 곳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구를 제 때에 충족시켜 성공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는 위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연스럽게 결론을 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일을 떠맡아 해결하는 이공현 변호사 덕분에 외부기관과의 연계 연수프로그램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고 실현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공현 변호사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열심히 들어준다. 그렇게 다 들어주는 내공은 어디선 온 것일까?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십년 가까이 했어요. 서른세살에 교회 다니기 시작했는데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제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변화했고 솔직한 대화의 힘에 대해서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는 사실 자식농사에 성공한 사람으로도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큰아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치과의사로 있고 둘째아들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견 자식들이 머리가 좋아 그냥 성공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속 깨나 끓였더랬다. 큰아들의 경우는 국내 대학에 진학을 못해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컬리지로 보냈다. 전교생이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자연계열이 대학가기 어렵다는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어거지로 인문계열을 선택해 고생하던 아들이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에선 공부 못한다는 억눌림을 받다 “잘 한다, 천재 아니냐?”소릴 들으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됐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약칭 유펜, 미국 동북부 8대 명문사립으로 아이비리그에 속해있다) 치의대에 진학했다.

“문제부모는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는 게 오랫동안 중3 담임을 맡으며 아이들과 대화해온 제 소감이에요. 아이들을 기른 수십년 동안 아이들은 별로 변한 게 없는데 저희 부부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키우며 많이 배우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고민이 있을 때 상담하는 사람은 90% 이상이 또래들이더군요. 부모는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사고를 쳤을 때나 찾아요. 참 불행한 일 아닙니까?

아이들이 와서 저한테 그래요. ‘선생님 땅 위의 지옥이 어딘지 아세요?’ ‘지옥이 하늘에 안 있고 땅에도 있냐?’ ‘그럼요. 엄마랑 있는 곳이 지옥이에요’랍디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여야 할 부모자식간이 지옥이 되고 있어요.

저도 자식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공부도 못하는 것이…’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니 아이들은 다 다르고 적성과 재능이 다 다른 법인데 부모가 그에 맞는 접근법을 찾아야할 것 같아요.”

사진촬영을 위해 1층 정원으로 내려갔다가 마침 산책 나온 아기를 만났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니 아기가 다가와 주운 열매를 건네준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라는 걸 눈치챘나보다.

“아들 둘이 빨리 장가를 가 손주를 안아봐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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