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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윤재윤“우는 사람과 함께 울줄 아는 법조인이 되길”
대한변협신문  |  news@korean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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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2.06.25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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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사건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로펌의 전체적인 방향, 미래를 총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더라고요. 모든 게 새롭고 흥미진진합니다.”
이번 ‘변협이 만난 사람’은 인터뷰 대상자 중 가장 변호사 연차가 낮은 사람이다. 변호사로 새 출발한 지 막 100일이 돼가는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를 만났다.
“법원장을 하시다 바로 변호사가 된 소감은 어떠세요?”
“춘천지법 법원장 시절은 참 행복했어요. 작은 법원이지만 사법행정적 측면에서 재판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 고민도 많이 했고 할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감사한 점은 지법원장이 고등법원 재판장이 돼서 계속 재판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2010년 8월에 부임해선 고등법원 원외재판부로 민·형사재판을 전부 처리해서 무척 바빴어요. 지난해 2월에 김인겸 부장이 와서 나누니까 한숨 돌렸죠. 특히나 강원지방변호사회 이택수 회장님 등 변호사회에서도 많이 협조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재판의 주체는 판사만이 아니라 변호사이며, 변호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우리 법조계에서 변호사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어쨌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힘든가 봐요. 몇 십년 만에 살이 빠지더군요.”
법원장을 하다 법무법인의 대표로 갔다는 평면적 이력 외에 그의 행보에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하나하나 알아가기로 했다.
변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법원에 대한 애정을 많이 드러내면서도 이제는 변호사로 고민이 옮아갔음을 느끼게 했다.
“사실 우리 법원은 재판시스템 개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고 실질적인 효과도 많이 얻었습니다. 이제는 변호사들이 연구하고 노력해 개선안을 내놓을 때라는 생각입니다. 요령부득인 준비서면도 참 많습니다. 주장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서면은 말할 것도 없고요. 변론방식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종에 와서 이러한 생각을 현실화시키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
“변호사들이 모이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하하. 한 로펌에서 선도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변협 차원에서 연구하고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변호사연수원에서 교육하고 말입니다.”
요새는 평생법관제도 있고 법원장을 하다 재판을 하는 부장판사로 돌아가는 일이 명예롭게 여겨지는 상황에서 법관이 가장 어울리던 윤재윤 법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표는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세종에서 제의를 받고 3~4일 고민하다 결심했습니다. 이전부터 변호사 생활을 꼭 해봐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계속 법원에서 있다 보니 시간이 자꾸 흘렀죠. 법관이라는 게 무대 위에 펼쳐진 증거를 보게 되잖아요. 30년 동안 무대 위만 바라다보니 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지 무대 뒤, 무대 아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더군요. 더 늦추면 못할 거 같았어요. 전격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보니 인생 2막이란 생각에 덜컥 겁이 나더군요. 아, 세종은 제가 원래 호감을 느끼던 로펌이었어요. 제가 심약해서 단독개업은 엄두도 못 냈고요. 아내도 반대는 않더군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활발한 변호사로서의 생활을 해보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그가 변호사가 되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판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를 느낀 것이라고 한다. 그는 변호사 100일을 지내면서 한마디로 ‘법관의 재발견’을 하였다고 말한다. 법관이 얼마나 중요한 소임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절실하게 느끼며 그 일을 30년이나 무사히 해왔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사하게 된다고 몇 번을 언급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무사히 판사생활을 한 정도가 아니다. 그냥 지나치면 될 일도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까, 개선점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온 보기 드문 판사였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건축 전문 재판부를 맡고 있을 때는 ‘건설분쟁관계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건축 전문 재판부 3년6개월의 성과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분쟁 관련 책이어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2006년에는 언론중재부장을 3년6개월 역임하며 사례를 모아 ‘언론분쟁과 법’이라는 책을 냈다. 철우언론법상을 수상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4년에 가정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는 ‘소년자원보호자제도’를 창안하기도 했다. 소년사건을 해보니 조금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면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갈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소년원으로 보내기보다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신신당부하며 아이들을 맡겼다. 제1호는 ‘십대들의 쪽지’라는 잡지로 유명한 故 김형모씨였고 친한 변호사, 같은 교회 교인들이 동원됐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소년사건에서 자원보호자를 지정할 정도로 확립된 제도가 됐다.
“건설과 언론 분야의 전문가가 된 배경은 뭔가요?”
“배경이랄 것까지야 있나요. 건축 전문 재판부를 맡고 보니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는 거예요. 공부해가며 재판을 했죠. 대한변협에서 2002년에 변호사연수에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40쪽짜리 강의록을 만들어서 강의를 했는데 그게 공전의 히트를 친 겁니다. 워낙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던 때여서요. 그걸 썩히기는 아깝고 해서 재판을 하면서 2년 동안 휴일 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책으로 냈어요. 그래서 초판은 끔찍하도록 부실합니다. 그런데도 하도 반응이 좋아 계속 개정판을 냈고 2011년에 4번째 나온 개정판은 책 같아졌습니다. 그게요, 여름 휴가철에 좀 여유 있게 쓴 부분은 읽을 만하고 평일 날 야근하며 쓴 부분은 대충대충 쓴 티가 나는 겁니다. 하하. 그렇게 쓴 책이 대우받는 거 보면 우리나라 전문성이 약한 거 같아요. 한 10년 했더니 전문가 소리 들어요. 겸손의 말이 아니고요, 그래서 연수나 강의 나가면 그래요. 한 10년만 한 분야를 파고들어 공부하고 1년에 논문 1편씩만 발표하면 전문가 된다고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택해 1년의 절반 정도를 투자해서 논문을 한 편씩 써서 열 편만 쓰면 된다고요.”
윤재윤 변호사의 그 말을 들으며 든 생각은 ‘말이 쉽지’였다. 재판하기도 바쁜 와중에 책 쓰랴 연구하랴 대개의 사람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임엔 틀림없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내는 책과 연구, 재판에만 몰두해왔다고 보면 오산이다. 갱생보호단체인 담안선교회를 비롯, 부스러기나눔회, 화곡동 재활시설 등 사회단체의 봉사와 후원도 계속해왔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이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할 수 없어 묻어두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월간 에세이’ ‘좋은 생각’ 등에 꾸준히 기고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고 가슴 따뜻하게 해주는 글들을 써 온 것은 유명하다. 그의 칼럼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는 글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 학술적 업적도 훌륭하지만 사람을 위로하는 그의 글이야말로 우리 법조계가 가진 훌륭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천착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아주 근본적인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하는 것. 법관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무대 뒤를 보고 싶어 변호사가 된 것도 그 화두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재판하면서 검사와 변호사가 짜놓은 틀이 아니라 인간을 보고, 인간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과 자세가 그를 더 나은 판사가 되도록 이끈 것이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선고를 할 때 단순히 형을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준비를 해서 형을 선고하는 이유와 바람 등을 설명하는 판사로 유명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치유적 사법’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를 접한 윤재윤 변호사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아! 이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재판절차에 관여하는 경찰, 검찰, 판사 등 사법담당자 모두가 피고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니 좋은 태도, 좋은 영향으로 그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개선시키자는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마약사범에게 형을 선고하지 않고 교육을 받도록 한 다음 법정에서 졸업식을 하는 것이다. 판사가 축하의 말도 해주고 가족과 자신을 돌봐준 사회사업가도 배석한 가운데 교육을 받은 소감을 말하면 함께 축하해주고 바른길을 가도록 함께 다짐하는 행사를 갖는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같은 형을 선고하더라도 “넌 쓰레기야” 하는 눈빛으로 하는 것과 “당신이 살아온 과정을 보니 잠깐의 실수를 하였지만 다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생깁니다”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
“물론 이런 말을 할 때 90% 이상의 피고인이 제대로 듣지 않고 헛소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보여요. 그러나 100명 중 한 명이라도 자신에 대한 타인의 기대를 생각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퇴임 전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기억도 안 나는 피고인인데요, ‘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에 기대어 3년째 수감생활을 견디고 있다’는 편지였어요. 형사재판만이 아니라 민사재판을 할 때도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사법현실은 시간에 쫓기고 사건 빨리 떼는 판사가 훌륭한 판사다. 신속이냐 적정이냐는 사법부의 오랜 고민이지만 날로 늘어나는 사건 속에서 판사는 마치 판결 기계처럼 판결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제는 당사자들도 조정이 아닌 재판을 원한다면 시간을 요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정확한 판결이 되도록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윤재윤 변호사의 의견이다.
“판사라는 건 자기확신을 갖는 게 제일 위험한 거 같아요. 항상 불안감을 가져야 돼요. 재판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없어지더군요. 재판은 사건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 하게 되잖아요. 증거는 화석화되고 범행 직후, 수사단계, 재판단계 증언은 다 달라지고 또 말이라는 게 한번 우연히 뱉어지고 나면 의식을 지배하게 돼서 사실로 믿는 경향도 있고요.”
계속 판사라는 직업의 어려움, 부담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래도 그의 의식은 아직 판사인가 보다.
“어렸을 땐 어땠어요?”
“3남1녀 중 장남이에요. 겁이 많고 공상가였죠. 서울 변두리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도 생각나요. 초등학교에도 정치가 있구나, 생각했던 거요. 아이들 사이의 알력을 조정하고 화합하게 만드는 일이 재밌었어요. 전 근본적으로 사람에 관한 관심이 컸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사회학과 같은데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 소원이 워낙 컸죠. 고시공부요? 그야말로 진흙밭길이였어요. 아버지가 조그만 제재소를 하셨는데 동업자의 꼬드김에 빠져 수출을 해보자고 나섰다가 완전히 당했어요. 동업자는 자금을 몽땅 들고 해외로 도망쳐버리고 아버지는 구속되셨어요. 아버지를 도와드리던 저는 1년간 지명수배를 당했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결핵 3기였어요. 끼니마다 한 주먹씩 약을 먹었어요. 얼마나 독한 약인지 이름을 아직도 안 잊어버렸어요. 하이파스랑 마이암부톨. 끔찍한 20대를 보내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처분을 받았지만 피의자신분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죠. 아버지도 곧 집행유예로 나오시고 신앙생활하시며 잘 사셨어요. 그래도 그때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제가 그래도 웬만한 판사로 지내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담담히 웃으며 말하는 기억이지만 공직생활 중에는 한 번도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럽고 건드릴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변호사가 되고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봇물 터지듯 그때 기억을 말하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억눌린 기억의 편린을 꺼내 들자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한다.
“딸만 둘이시죠?”
“네.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할 줄 몰랐어요. 이제는 딸만 둘인 게 자랑이고 복이더라고요.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이니 열심히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죠. 6년이면 65세 정년이니 그때 아름답게 퇴장하도록 열심히 일해야죠. 이제는 사실 돈벌이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률가의 가(家)는 일가를 이룬다는 뜻이잖아요. 건전한 권위, 품위 있는 존재로 인정받으려면 인간을 이해하려는 자세, 겸손함,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가져야 해요. 상습범죄자에 대해서도 40대에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젠 그들이 상처투성이에다 교육받지 못하고 가족도 없는, 사회시스템의 피해자로 보여요. 그들 대부분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피폐해진 사람들입니다. 부자들도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것 같아요. 행복의 비결은 자신과 타인이 가치 있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진짜로 믿는 데 있어요. 인간은 다 존엄하다는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존재가 법률가여야 할 것입니다.”
그와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음은 편안해지고 머릿속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영혼이 맑은 사람과 함께하니 그 정화의 기운을 나눠 받은 기분이랄까. 좋은 말들을 청한 김에 청년변호사에게 해주고픈 말을 청했다.
“첫째는 인문학적 교양을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인문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해 높은 곳에서 정확히 보는 것입니다. 통찰력이랄까 지혜, 진실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우는 작업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진짜 연민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연민을 가지고 진정한 관심으로 타인을 대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의 지표입니다.”
안셀름 그륀이라는 독일신부는 “지혜로운 노인은 세상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아직 윤재윤 변호사를 노인이라 부를 순 없지만 그가 80대가 될 즈음에는 우리가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법조원로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들로 그를 만나고 돌아서는 길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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