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친구인 탤런트 정한용이 자기가 로펌대표로 나오니까 한번 보라고 권유했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로펌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미녀 탤런트 김희애가 아들을 데리고 갔던 치과의사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절제하려고 하지만 흐르는 마음은 잡을 수 없다. 그게 감성이고 사랑이다. 밀회 아닌 밀회가 들키고 그걸 보는 법률가 집안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고시 양과를 합격한 시아버지, 최고로펌의 변호사인 사위가 유책사유를 검토하고 증거수집에 혈안이 된다.
작가의 눈을 통해 본 법조인의 모습이 너무 건조하다. 감정을 논리로 재고 법으로 단죄하려는 메마른 모습이었다. 그걸 보면서 몇 년 전 경험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성 아나운서가 초대 손님으로 왔던 중견PD에게 좋은 감정을 품었다. 두 사람이 식사하는 장면이 남편에게 발각됐다. 남편은 아내를 몰아치며 불륜을 자백하라고 했다. 아내는 삶을 포기하겠다는 편지를 써 놓고 한강으로 갔다. 그 시각 남편은 편지를 보고도 아내의 이메일 해킹에 정신이 없었다. 증거가 중요한 것이다. 반면 중견PD는 수상경찰서와 한강 다리를 헤매면서 그녀를 살리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사회적 위치도 가정도 안중에 없었다. 오직 그녀를 살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의 사랑의 힘으로 반포대교에서 투신했던 그녀는 바로 구조되어 살아났다.
그 문제가 현실 법정으로 옮겨졌다. 남편의 권리가 침해당했으니 위자료를 내놓으라는 소송이었다. 판사가 보는 건 호적과 증거로 제출한 해킹한 이메일 자료였다. 법률가다웠다.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었다. 법에서 보호하는 남편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한 여자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모든 걸 던지고 그녀를 살린 사람이 그 여자의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법이 인정한 호적상의 남편은 사랑에선 가짜였다. 법과 논리가 감성과 사랑을 규제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인가 짙은 의문이 일었다. 법은 껍데기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할 때가 잦았다. 진실과 기록 속의 사실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 판사는 형식논리와 꾸며진 증거에 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얻어맞고 쫓겨난 언니를 맞아들여 침대에 눕히고 간호하는 여동생이 소리친다.
“잘못한 건 알지만 내게 더 중요한 건 언니라는 사실이야.”
그 말이 잔잔한 파문이 되어 마음 속에 퍼져 나갔다. 나는 아내가, 아들이 내게 가장 중요한 가족이라는 걸 잊고 공정과 객관이라는 치밀한 눈금의 자를 들이댄 적은 없었던가. 30여년을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다. 상담객의 아픔을 들어도 나는 나무기둥이다. 그들의 아픔보다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는 어설픈 법 지식만 자랑같이 쏟아냈다. 공정과 객관의 치밀한 눈금을 가진 잣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고난에 빠진 성경 속의 욥에게 친구들은 공정이라는 논리로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라야 한다. 비판 잘하고 똑똑한 변호사들은 많다. 그렇지만 함께 행진하려는 동지들은 드물다. 잘나고 똑똑한 것보다 감성이 흐르는 변호사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결속은 보지 못하는 걸 볼 때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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