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보내고 돌아보면 남는 건 사람뿐이라고 하던데, 이는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 좋은 기억이 많이 쌓여있는 것이 그런대로 잘 보낸 인생이란 뜻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잡지나 신문에 실린 회고담을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에 대한 눈물겨운,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좋은 기억들에 대한 것들이다. 물론 그 글을 쓴 이의 삶이 온통 그런 기억들로 가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분들의 기억과 대비하면 내 기억은 왜 이리 삭막한지 조금 쓸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판에 직업 때문에 만나게 되는 사건 당사자들과 의뢰인들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법조인으로 일하면서도 흐뭇한 기억이 없지는 않을 텐데,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람들은 판사 시절 끝을 모르는 집요함으로 나를 질리게 만들었던 사건 관계인들로부터 최근 작별한 불편했던 의뢰인까지 좋지 않은 기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좋지 않다는 것은 윤리적인 판단은 아니고 내가 불편했다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조금은 이기적이기까지 한 판단이다. 그런데 그런 기억들을 더듬다 보니 문득 그 사람들 사이에 또 다른 공통점이 느껴진다.
그것은 유독 오래, 선명하게 기억나는 불편했던 사람은 대부분 그들이 나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는 공통점 외에도, 그들의 끈질긴 주장에 조금은 타당한 측면이 있고 나나 나와 같은 쪽에 있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개업 초기에 만났던 의뢰인 중에는 자신은 사기 범행에서 사소한 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주범이 달아나는 바람에 주범으로 몰렸다며 억울해하는 피고인이 있었다. 변명도 그럴듯했지만 그 의뢰인과 부인이 푸념처럼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혹해서, 이런 사랑을 한 사람들이 다른 범행도 아닌 사기죄를 저지를 리는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변론을 하고 피해자들에게 연락하여 합의서를 받아내려 노력까지 했었지만 주범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면서 변호인 말을 전혀 믿지 않는 재판부를 탓하고 있는데 피고인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신이 주범임을 당당히(?) 밝히며 체포되지 않은 다른 종범을 공갈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고, 처가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아주 솔직한 이유를 내세우며 착수금 반환을 요구하고 가족을 시켜 시위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한동안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졌던 괴로운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변호사를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만큼 괴로웠던 기억이었지만 얼마가 지나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해프닝으로만 기억에 남았다. 그냥 별사람도 다 있다는 정도의 기억으로만 남고 내 삶에는 별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새기려면 기억 속의 쓴 물이 올라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는 그가 그런 불편한 행동을 하는 데 조금은 이해해줄만한 구석이 있는 경우이다. 차마 말하지는 못하지만 내 쪽 누군가의 잘못이 그가 그런 행동에 나아가게 하는데 일조를 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결국 내게 가장 불편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은 나를 괴롭혀 미워 죽겠는데 뭔가 개운치 않은 사정으로 편하게 미워할 수 없는 이유를 조금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는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불편함이 생겼다. 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그 이유라는 게 내가 가해자임을 보여주는 사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의뢰인을 대하는 자세는 조금 타협적으로 되었다. 처음에는 역지사지로 이해할 만한 구석이 없는지 탐색해 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없을 리가 없다. 남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능히 이해해줄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마당에 용서를 할 수는 없고 정상참작사유로 삼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 달래가며 ‘이 또한 지나가리’를 읊조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되면 옛날에 치워버린 ‘국방부 시계’라도 꺼내어 시곗바늘 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그러고 나서 기억 속 삭막한 화폭에 불편한 얼굴 하나 추가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만이겠지’ 해도 남의 싸움에 끼어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변호사의 운명 때문인지, 아니면 과욕을 버리지 못해서인지 매년 한두명씩은 그런 기억이 늘어간다. 나쁜 놈은 그냥 나쁘기만 하고 억울한 사람은 그냥 억울하기만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일인 것도 같다. 사실 그 이유야 아무래도 좋다. 다만 이제 자꾸 단조로워지는 기억인데 더 늦기 전에 좋은 느낌의 얼굴로 기억을 채우고 싶고, 안 되면 그동안 채워진 불편한 얼굴이라도 하나씩 내리고 싶다. 누구와 지난날을 이야기할 때 좋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듣는 사람이 미소 짓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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