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평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우리 모임)’은 1995년 3월 27일 부산교원공제회관에서 김기재 당시 부산시장과 15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하였다. 돌아보니 변호사 시작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그때, 예상 밖으로 큰 출범식에서 가슴에 꽃을 달고 행사장에 앉아 진땀 흘리며 어색해 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는 오랫동안 성폭행을 저질러 온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벌거벗겨진 채 칼로 위협당하다 엉겁결에 남편을 살해한 여교사 사건 등이 터져 나오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정폭력, 성폭력으로 병들어 있는지 세상이 알아가던 때였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새로 결성되거나 조직을 정비해 성폭력,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고취하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1990년 2월부터 상담활동을 해 오던 부산기독상담센터가 1994년 9월에 ‘사단법인 한국여성의 전화’ 부산지부로 전환하고 지역여성들의 큰 버팀목 역할을 해 오고 있었다. 우리 모임은 부산여성의 전화가 하는 많은 일들 중에서 법률상담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변호사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자발적으로 구상하고 모인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부산여성의 전화 이승렬 초대대표가 먼저 제안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승렬 대표는 근사한 출범식 행사를 마련해 주었는데 어찌 보면 앞으로 사회봉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이기도 했다.
출범 당시 우리 모임은 허진호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여 류도현·윤여진·정운·김욱태·박영주·강동규 변호사와 나 이렇게 8명으로 시작했다. 1995년 4월 3일 첫 상담을 시작으로 우리 모임은 매주 월요일마다 부산여성의 전화가 마련해 준 장소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 부산여성의 전화는 매주 미리 광고를 내고, 무료 법률상담을 희망하는 사람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접수하여 신청자들이 월요일에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변호사들은 그냥 상담만 하면 되도록 상담 전후의 사소한 업무처리를 부산여성의 전화 실무자들이 죄다 도맡아 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무료법률상담을 해주는 단체나 기관들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부산여성의 전화처럼 시스템을 갖추고 움직이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때 부산여성의 전화가 만들어 놓은 업무 매뉴얼이 이제는 여성단체나 상담소 등에서 거의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월요일마다 부산여성의 전화와 연계하여 무료 법률상담을 해 온 지 올해로 만 17년이 되었다. 그 사이 우리 모임의 변호사 수도 배로 늘어나 지금은 15명의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제 보니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 장준동 변호사도 우리 모임 소속이다!
우리 모임이 나이를 먹은 만큼 모임에 속한 변호사들도 중량감 있는 인사가 되었음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우리 모임이 바뀌었듯 부산여성의 전화도 대표와 실무자들이 계속 바뀌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유대관계는 이승렬 초대대표가 주춧돌을 놓은 이래 오랜 우정처럼 유지되어 오고 있다.
17년간의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우리는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바뀌는 것을 보아왔다. 출범 초기만 해도 상담실을 찾는 이들이 호소하는 주된 이혼 사유가 폭력과 외도였다면, 이제는 여성들이 성생활의 불만을 호소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며 남성이 찾아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며 헤어져도 아이는 절대 못 준다던 부부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서로 아이를 상대에게 떠넘기려고 애쓰는 씁쓸한 장면도 제법 보게 되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 보면 우리 모임의 출범 초기와 달리 이제는 무료법률상담을 해 주는 상담소나 복지관이 아주 많아졌고, 초창기보다는 우리 모임의 상담실적도 줄어들었다. 초기에는 밀려드는 상담신청자들 때문에 월요일 귀가시간이 아주 늦어졌고, 한 번은 앉은 자리에서 거의 4시간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연이어 14명 정도를 상담했던 일도 있었는데, 요새는 상담 신청자가 두세명에 불과한 월요일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슬슬 꾀를 부리며 상담신청자가 한두명이면 상담 장소를 부산여성의 전화 사무실에서 당번 변호사의 사무실로 변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모임의 변호사들은 부산지역에서 가정폭력으로, 성폭력으로, 혹은 법률의 무지로 고통당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매주 월요일 무료 법률상담 릴레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구성원들이 하나 둘 은퇴하더라도 밀려오는 후배들의 물결이 정말 세상이 좋아질 때까지는 그 릴레이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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