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근무할 때 인사이동이 있을 때면 묘한 경험을 하곤 했다. 환송식을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관용차를 타고 검찰청을 나서는데, 마무리할 일도 있고 짐정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대개는 바로 다시 청사로 들어온다. 그런데 떠난 지 10분도 안 되어서 돌아오는데도 어딘지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날 아침까지도 출근했던 익숙한 사무실이 그새 달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사표를 내고 떠날 때는 그런 느낌이 훨씬 강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공무원이 이럴진대 관공서를 드나드는 일반인들은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출입문이 달라졌지만 예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는 철문이 달려있었다. 대검 1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육중한 철문과 마주 서게 된다. 초임검사 시절 업무로 중수부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문을 바라보는 순간 저절로 위축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가 그런 기분을 느끼는데 하물며 조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잠긴 문 앞에서 얼마나 겁을 먹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변호사로서 법원과 검찰청을 출입하다 보면, 조금만 신경을 쓰면 드나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우선 차량 5부제부터 민원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물론 에너지 절감은 꼭 필요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이상 세금으로 유지되는 관공서에서 국민의 차량 통행을 막을 수 있는지는 지극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무심코 5부제에 걸리는 차를 몰고 온 사람들은 방호원으로부터 엄청난 죄라도 저지른 듯한 취급을 받으며 문자 그대로 쫓겨나야 한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법원이나 검찰에 애정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법원 중앙 출입구를 관용차만 이용할 수 있게 한 적도 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무거운 기록을 든 채 택시를 타고 왔다가 멀리서부터 걸어와야만 했던 여성 변호사 한분은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 이런 작은 일들이 우리 법조를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법원이나 검찰청을 반가운 마음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없다. 송사란 누구에게나 걱정되는 일이고 실제로 스트레스로 병을 얻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본다. 아무리 친절한 대접을 받아도 수사나 재판의 결과가 원하던 것과 다르면 좋은 기분을 가지기 힘들다. 그럴 때 관공서 특유의 작은 권위주의는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반대로 작은 존중과 배려가 잔뜩 흐렸던 기분을 활짝 펴게 해줄 수도 있다.
흔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는 기관으로 알려진 곳에 근무하다 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처지에서 재판이나 수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변호사로서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법원과 검찰이,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만 더 세심하게 헤아리고 문턱을 낮춰서 어쩔 수 없이 약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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