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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초 여성 법무병과 장군 이은수 준장
대한변협신문  |  news@korean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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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2.05.22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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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군법무관으로 걸어온 최초의 길, 보람있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최초의 여성 군법무관으로 임관하여 10년간 유일한 여성 군법무관으로서 중령으로 일하고 있을 무렵, 용산의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만났었다.
이은수 여성 법무실장. 별을 단 첫 여성 법조인인 셈이다. 인터뷰를 가기 위해 대전 계룡대를 향한 기차에 올랐지만 그가 10여년 전 그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춥고 길었던 겨울이 언제였냐는 투로 새침하게 말하는 아가씨처럼 봄날의 햇살이 화사한 5월 어느 날, 서초동을 벗어난다는 것만 좋아하고 마감에 쫓겨 제대로 인터뷰 준비를 못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만나자마자 10여년 전 그녀임을 알 수 있었고 친밀감 속에 대화를 시작했다. 인터뷰라는 것이 식사 한번 하는 것과는 달라서 자신에 대해 1시간 가까이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보면 친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01년의 인터뷰에서 11년이 흘러 나는 신문사를 바꾸긴 했으나 평기자에서 편집장이 되었고 그녀는 법무병과 최초로 여성 장군으로 진급해 있었다.
“아유, 정말 반갑습니다.”
서로 하나도 안 변했다는 덕담을 건넸다. 먼저 법무실장이 어떠한 직책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부터 대화를 풀어나갔다.
“법무병과는 군사재판과 군검찰업무를 관장하고 각종 유권해석, 국가소송 및 국가배상, 인권업무, 징계업무, 작전법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5년이면 미군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게 됩니다. 따라서 환수에 차질이 없도록 작전법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매주 1회 법무실 장교들이 모여 법무 아카데미라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무병과의 수장인 법무실장은 법무관 320여명을 통솔하는, 수적으로 작은 병과병과의 장이지만 사소한 행정처리도 법무실이나 법무관에게 자문을 받고 처리해야 한다는 의식이 군 내부에 자리잡아 가고 있어 법무병과에 대한 위상은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미군으로부터 처음 법무관제도가 도입되었을 무렵인 군 초기에는 그야말로 군법무관의 위상이 막강했었죠. 사회에서 법조인의 수가 적을 때는 의무복무 기간만 마치고 전역을 해버려 군법무관 제도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법에 의한 행정처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확립되고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죠. 이젠 군대 내 어떤 TF팀을 조직하더라도 법무관 한명은 꼭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군법무관의 수가 더 늘어나야 하는데 그에 따라주진 못하고 있다. 상비사단급 이상 부대에 법무실이 설치되는 정도다. 대령 편제도 많이 늘어나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5년 전만 해도 의무복무를 위해 임관된 단기 법무관들이 군법무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민간 법조계가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졸업생들이 함께 배출되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에는 직업적으로 장기 군법무관을 많이 지원하고 있는 상태다.
이은수 법무실장은 법조시장의 치열한 경쟁구조를 이야기하면서 10년의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장기 법무관이더라도 군에서 법조경력을 쌓은 후 5년이 지나면 자신의 적성에 따라 전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번에 로스쿨 졸업자 55명이 지원해 7명이 군법무관이 되었는데, 이중 6명이 여성이어서 화제가 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훈련도 똑같이 받나요?”
“훈련이 9주간 진행되는데 군사훈련이 6.5주입니다. 유격, 행군도 물론 포함되죠. 군인이 되기 위하여 훈련하는 것이므로 법무병과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건 오후 3시였다. 이날 오전에는 장군들 체력검정이 있어 이 법무실장도 3㎞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등을 실시하여 모두 특급을 받았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법제과의 법무관이 귀띔해 주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이 실장은 전혀 힘들어하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런 내색도 전혀 비치지 않고 “저는 정말 쉬운 길만 걸어왔어요”라고 하는 여유, 그것이 그가 가진 힘이고 저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무서워지기도 하고.
“군법무관이 되신 후 10년간 유일한 여성 군법무관이셨는데요. 전역하고 싶은 유혹도 느꼈을 거 같은데요.”
“처음 인터뷰했던 그때가 약간 위기였어요. 정말 외로웠거든요. 육아에 대한 고민을 누구와 얘기할 수도 없고…. 6개월 영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다음 전역을 결정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2001년에 한꺼번에 다섯명의 여성 군법무관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전역생각을 접었죠. 하하”
그렇게 다섯명의 여자후배가 들어왔지만 그들 중 지금 남아있는 사람은 한사람뿐이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업계에는 여성 변호사의 수가 점차 확대되고 고위직에 진출하는 것이 별로 뉴스가 아니지만 군법무관은 아무래도 그렇지가 않다. 현재 육해공군 전체에서 44명의 여성 군법무관이 활약하고 있다.
“아무래도 전방 같은 오지에서 1~2년씩 보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도시라면 그래도 육아를 부탁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오지로 가면 쉽지 않거든요. 저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런저런 사연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 하나인데 둘은 정말 엄두가 안 나더군요. 계속 남의 손에 맡겨야하니…. 흔히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도움이 없으면 계속 근무하기 어렵다고들 하죠. 전 돈으로 해결했다고 해야 하나….”
구구절절 힘든 사연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감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여성 군법무인력을 양성하려면 제도적인 보완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군법무관의 길을 선택하게 됐는지 물었다.
“지금은 구미로 지역명이 바뀌었는데요, 경북 선산에서 나고 자랐어요. 평범한 농사꾼 집안이었지만 부모님의 향학열, 신앙심, ‘나는 못 배웠지만 자식은 꼭 잘 가르치겠다’는 신념이 특별하셔서 공부할 수 있었어요. 고모부가 법대를 나온 분이어서 제게 법대를 권유하셨죠. 법대에서 공부를 하고 자연스럽게 사법시험 공부도 하고 원서를 내러 갔는데 선배들은 하나 더 내더군요. ‘그게 뭐냐, 나도 더 내겠다’ 해서 사법시험과 함께 군법무관 원서를 냈는데 1차에 붙었어요. 졸업 후 경제연구소 행정파트에 취직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학사출신에다 경제전공이 아니어서 장래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기왕 군법무관 1차에 합격했으니 2차를 응시해 보자는 생각도 들어서 직장 끝나고 저녁에 한두 시간씩 공부했는데 덜컥 합격이 된 거예요. 보이지 않는 도우심이 있었죠.”
제발 그런 얘기는 딴 데 가서 하지 마시라는 당부를 드렸다. 어쨌든 남들에 비해서 쉽게 합격했고, 여군병과가 폐지되고 여군들이 보병 등 각 병과로 분리된 직후에 임관하는 등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다. 그는 타이밍 좋았고, 운이 좋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운의 문제겠는가.
사람의 능력이란 그만그만한데 어떤 자세로 일하고 어떤 품성으로 사람을 대하는가, 하루하루의 소소한 자세, 태도가 지금의 그를 이끌었던 것이다. 무얼 해냈고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어떤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인터뷰들을 종종 본다. 그들이 인터뷰하기도 편하고 티도 난다. 이은수 법무실장처럼 자신의 일을 극구 평범한 일로 치부하고 별거 아닌 일로 이야기하면 힘이 들 수밖에.
어찌 어려움이 없었으며 간난신고가 없었을까.
그녀의 입장, 군의 세 번째 여성장군, 첫 여성 법무실장으로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조직의 융화를 생각해온 태도가 수십년 쌓여 지금의 태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업적을 절대 내세우지 않고 법무병과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 법무실장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서 써야 한다는 강박감도 들었으나 그것 또한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나무를 그린다면 아마도 독자들은 숲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이 책임지는 자리를 맡게 되면 리더십의 부족을 많이 염려합니다. 어떠셨습니까?”
“군대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급에 맞춘 명령과 복종체계가 엄격히 적용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소령부터는 부서장, 처장, 법원장 등 여러 분야의 책임자로서 골고루 훈련을 하게 됩니다. 부서장을 계속 맡고 다양한 후배들을 통솔하게 되니 자연스러운 리더십 훈련이 됩니다.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평가가 제공되는 곳이 군법무관입니다. 저는 술 먹는 회식을 잘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후배 법무관들이 불만은 있을 수도 있지만 리더십과 큰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처음 취재기자로 나섰을 때가 생각났다. 남자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술을 먹겠다고 각오했었다. 그게 맞는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가 살아나가는 방식이 다른 것만큼이나 술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여성이 꼭 남성화되어야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군사법원 관할관 확인권, 군대 내 인권문제, 공정선거 문제, 법무병과의 위상 등에 대해 물었다.
“군사법원의 판결에 대한 관할관 확인제도는 군사법원 판결의 95%가 원판결 그대로 확정됩니다. 예를 들면 운전병의 교통사고 벌금형에 대해 ‘사정이 딱하니 조금 감경해주자’ 하는 정도의 소소한 감경이 있는 정도입니다. 군대 내 인권상황은 국가인권위원회 등 인권단체들도 관심이 많은 사안입니다. 국가인권위 방문조사 등에는 함께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제 군대 내 인권은 예전과 달리 많이 개선됐습니다. 예방차원의 교육에 주력하고 있고 단계별 교육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부재자 투표도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여건을 보장하고 엄정중립을 강조합니다. 인트라넷이라는 내부통신망에 익명의 형태로 진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상황근무 후 휴식을 보장하지 않거나 일과 종료 후 야근 등 추가근무를 하고 보상을 하지 않으면 바로 인트라넷으로 상담을 합니다. 군인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휴가, 수당, 휴식 등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요즘 장병들의 한 모습이기도 하죠.”
5월 1일에는 법무병과 창설 66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치렀다. 전후방 각지의 법무병과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바람직한 법조인의 덕목을 생각하는 강연회도 가지고 병과발전의 새로운 각오도 다졌다고 한다. 법무병과를 이끌어온 지도 1년여가 지난 이 법무실장에게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를 물었다.
“솔직히 부담이 컸었지만 선배들이 일구어 오신 법무병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노력해왔습니다. 군법무관들의 작전법 능력 향상을 위한 ‘법무 아카데미’를 매주 개최하고, 작전분야에 있어서도 국제법과 전쟁법 등이 준수될 수 있도록 장병들을 상대로 전쟁법 교육을 실시하고, 모든 훈련에 군법무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등은 미래의 병과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새로 조직된 징계감찰과를 통해 법무자체 감찰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군내에서 군법무관이 법조인이기 전에 군인임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안보분야 형사법발전을 위한 ‘국제 군사법 심포지엄’, 로스쿨 실무수습과정 운영 등도 진행 중인 과제이므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군법무관이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군법무관은 군사법 업무뿐 아니라 법령해석, 국가소송, 기획업무 등 법률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고 많은 경험을 통해 군내 최고 법률전문가가 될 수도 있죠. 군 업무가 민간업무와 중첩되는 영역도 점점 늘고 있어 비전도 있다고 봅니다. 여성도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장군이 됐다는 것은 집에 갈 날 받아놓은 것일 뿐이라고 웃는 이 법무실장은 마무리하고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고 당부했다.
“10월에 국제 군사법 심포지엄을 합니다. 국제적 학술행사로 20여개 국가의 군법무관과 학자들이 와서 사이버테러와 같은 국제적 사안뿐 아니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같은 한반도 문제들도 토론하고 연구하는 행사입니다. 올해는 지휘책임이라는 주제로 전시 지휘관의 부하의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현재 문제가 되는 있는 국내외적인 이슈에 대해 논의합니다. 세 번째 열리는 행사로 이번에는 육군본부 법무실에서 개최합니다. 대한변협에서도 관심 가져주시고 변호사들이 발제도 해주세요.”
법무병과가 발전하는 것은 군내의 법치주의와 인권옹호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일 것이다.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성원해야 그 나무가 더욱 가지를 뻗어나가고 알찬 열매를 맺을 것이다. 아마도 그 나무를 위해 거름이 된 많은 사람들 속에 이은수 법무실장도 속해 있을 것이다.
/ 박신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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