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전날이었다. 저녁 밤 늦게 회의를 마친 후 집에 도착해 보니 둘째가 “엄마 스승의 날이라 카드를 사야해요. 문방구에 같이 가요”하며 손을 잡아 끌었다. 피곤한 상태라 발걸음을 돌리기 귀찮았지만 감사 카드를 쓰겠다는 아이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침 그날 회의가 교원들 징계관련 소청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던 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아이의 해맑은 마음이 언제까지 다치지 말아야 할 텐데….
교사들의 체벌이 금지된 이후 학생이 동영상을 찍어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소위 ‘체벌교사’로 몰린 교사에 대한 징계 건, 성희롱 교사에 대한 징계 건, 성희롱과 학교폭력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교장에 대한 감독 책임을 묻는 건, 행정절차 착오로 인한 징계 건, 금품 수수 건 등 그날도 다양한 안건이 있었다.
징계를 당한 억울함에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분, 암에 걸려 수술을 하게 생겼다는 분까지 하루종일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퇴직을 무사히 하는 것 자체가 정말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그들의 바람을 모두 들어주지 못해 미안함까지 겹쳐 소청 심사가 있는 날은 밤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해 막걸리나 와인을 한 잔 마셔야 잠이 들기도 한다. 그 날도 그랬다. 덕분에 판사님들의 심정을 많이 헤아리게 되었다.
스승의 날은 왜 만들었고 언제부터 있었을까. 정말 교사들은 이날을 좋아할까. 신문에 보니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부담’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교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라고 한다. 그럴 만하다. 사제 간의 신뢰와 사랑을 나누자는 스승의 날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촌지 등 부정적인 단면이 부각되니 교사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요즘 들어 교사들이 늘 징계의 ‘위험’ 속에 있다. 그러나 나조차도 스승의 날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않으면서 마음 속으로 ‘정말 이래도 되나’ 걱정이 슬며시 되는 것이 현실이다.
큰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절대 아이 앞에서 선생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것은 심지어 학원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선생님의 권위를 부모가 먼저 무너뜨리고 선생님으로부터 배움을 받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현재까지 아이들의 담임선생님들은 매우 존경스럽고 좋은 분들이어서 큰 고민없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개그맨 전유성씨는 ‘예부터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해서 선생님의 그림자는 물론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고 해 웃음을 주었는데, 우리가 부모로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그림자도 차마 밟기 어려운 존경스러운 스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고 가르쳐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아닐까.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을 맡고 있어 한번은 법정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재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더니 바로 어떤 남자 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선생니임~! 감사합니다”하고 손을 잡고 안겨 울먹이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를 맞는 미소 띤 선생님 얼굴 뒤로는 후광이 비치고 그 선생님의 겨드랑이 밑으로 마치 천사의 날개가 뻗어나오며 그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는 듯이 보였다.
그 아이라면, 그 선생님이라면 이 아이를 다시는 이런 법정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걱정하고 상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정까지 따라오는 한 선생님의 정성이 한 아이의 인생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그 반대는 어떠한가. 상상도 하기 싫고 언급하기도 무서운 일이다.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직업 중에 청렴성, 도덕성을 더 요구하고 그것을 지킬 것이라는 것을 담보로 하여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직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겼을 때는 그동안 받은 존경의 크기보다 더 크게 비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 변호사, 법조인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삶을 매도당할 때, 피할 수 없는 억울함에 밤잠을 자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릴 정도 힘들기도 할 것이나 그것을 지키지 못할 때 오는 사회적 해악에 대한 비용을 생각하면 오늘 다시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를 먼저 돌아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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