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정치 문화,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 열정과 패기’를 상징하는 ‘청년정신’을 되살리는 것을 모토로 ‘청년당’ 창당. 나이와 세대를 넘어, 불타는 청년정신을 간직한 진정한 청년들과 함께 이 사회의 의미 있는 비주류가 되기를 자처했다가 쫄딱 망한 지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하든지 간에, 청년정신을 사랑하고 청년정신을 평생 잃지 않으려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적지 않은 내상을 치유하고 엉망이 된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변호사로 돌아왔고, 2주 전 사무실 개소를 그럭저럭 마치고 법률상담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 친구는 청년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청년인데, 예전에 ‘슈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커밍아웃을 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커밍아웃은 come out of closet, ‘벽장 속에서 밖으로 나오다’는 뜻으로,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커밍아웃. 나는 왠지 이 말이 좋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벽장 속에 꼭꼭 숨기고 싶은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상처를 잘 보이게 드러내놓고 그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라고 하니, 안타깝게도 상처는 숨기면 숨길수록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을 정도로 커진다.
치료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치료 방법을 몰라서 또는 내 안의 진짜 고통의 원인과 마주하기가 겁이 나서 그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외부 환경을 탓하는 방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비교적 가볍고 얕은 부위의 상처들부터 먼저 드러내 놓는 ‘커밍아웃의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다섯살 때쯤, 나를 볼 때마다 내가 남자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혀를 차며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던 어떤 아주머니의 쭉 찢어져 올라간 두 눈을 지금도 기억한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게 되면서 엄마와 떨어져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혼자 학교 운동장을 방황하거나 집으로 되돌아가기를 수도 없이 했었다. 그때의 서글픈 심정과 상실감은 지금도 금세 되살아날 정도로 강력하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초콜릿만 사흘 내내 훔친 적도 있고, 버스에서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아저씨가 내 몸을 툭툭 건드리고 가서 기분이 나빴던 경험이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감정적으로 체벌을 가하는 선생을 보며 나중에 성인이 되면 꼭 찾아가서 똑같이 때려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처 리스트를 적다 보면 나 자신을 제3자 바라보듯 할 수 있어 묘한 기분이 드는데, 이 느낌이 은근히 괜찮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상처가 되는 사유들도 서로 다르고 상처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이다. 따라서 내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남과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인지하기 위한 ‘초진’과 같은 것이다.
서민층을 위한 법률사무소를 표방하고 특정요일에 한해 무료법률상담을 실시한다고 하니, 평소 변호사 사무실 방문을 망설이던 사람들의 상담 신청이 이어졌다. 피상담자들의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듣는데, 문득 이 분들이 변호사인 나에게 ‘넓은 의미의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지들에게도 상세히 알리지 못하고 숨겨왔던 고민, 억울함, 부끄러움, 욕심 등을 힘겹게 밖으로 꺼내면서 고통이라는 벽장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시도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것이다.
사는 게 힘들고 답답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기 때문인지, 법률상담과 인생 하소연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상담들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법률상담은 의료상담과도 달라서, 더 끈끈하고 더 사적이며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과정일 때도 있다. 특히 감정적으로 매우 취약해진 상태에서 변호사를 찾아온 피상담자에게는, 냉철한 법률 판단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내 마음도 편치 못했다. 법률 요건에 맞는 객관적인 진술과는 거리가 멀어서 들으면 들을수록 무슨 말인지 정리가 잘 안 될 때도 많지만,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변호사 앞이기에 봇물 터지듯 더 잘 나오는 속사정 이야기를 편하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에 한발 다가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알고 사랑하고, 상처에 대한 자체 진단과 치유도 가능한 건강한 인생? 환부를 드러내는 커밍아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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