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성폭행 당하던 여성이 국가에 애절한 구조요청을 했지만 경찰의 안이한 대응으로 적절한 시기에 보호를 받지 못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의무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할 의무이다. 이는 국가권력을 신격화한 토마스 홉스조차 인정한 것이다. 평화주의자 버트런드 러셀조차 국가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물리력의 핵심이 경찰과 군대이며, 내부 반란이나 패전으로 무너지지 않는 한 국가의 힘은 절대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절대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흉악범의 손아귀에 잡혀 바람 앞의 등불같이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장시간에 걸쳐 받았음에도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1차적인 국가의 기본의무조차 망각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는 합법적 폭력을 저지르는 무서운 존재였다. 국가 권력의 남용과 횡포를 어떻게 제지할 것인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근세 사상가들의 고민이었다.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론을 제창한 사상가들은 국가는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존 로크는 주권재민과 법치주의에 근거하지 않고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국가권력 제한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장 자크 루소는 국가와 정부를 분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정부는 국민에게 고용되어 맡겨진 권력을 주권자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대리자에 불과하며, 정부가 법치주의에서 이탈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경우 국민의 저항권, 불복종 투쟁을 통해 정부를 무너뜨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람 하나를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감옥이다”라고 하면서 악을 저지르는 국가에 대한 저항방법으로 시민불복종을 제시하였다.
이런 사상가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국민으로서의 지위가 높아지고,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국가의 불간섭이 아니라 인권보호에 있어서도 국가의 소극적 보호의무를 넘어 적극적인 보호의무가 강조되고 있고, 모든 사회악과 사회갈등의 근원으로 간주되어 온 경제적 불평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규제가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바야흐로 복지국가가 국가의 지향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산과 소득이 있는 자의 부담과 의무는 더욱 늘어난다. 요즘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저지른 공권력에 의한 납치, 불법구금, 가혹행위, 살해 등 국가는 공권력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전쟁 중 군과 경찰이 정당한 이유와 절차없이 민간인 학살을 한 데 대해서도 엄청난 국가 배상책임이 선고되고 있다. 정의를 바로 잡는 지당한 판결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과거의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는 고스란히 후손인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5월이면 종합소득세를 내는 달이다. 복지정책이 급증한 오늘날 조세납부자이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관계, 세금을 징수하여 사용하는 국가와 지방정부, 세금 수혜자들의 성실의무와 도덕적 의무를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정부에 바라는 최소한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의, 즉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 권리·소득·기회·부·권력·명예 등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유시민 전 장관이 쓴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어보고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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