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장관으로 내정된 어떤 여성 후보자가 오피스텔을 소유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국회청문회에서 나선 그녀는 “그 중 한 채는 유방암 검사 결과 암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 대한 애정 표시를 물질로밖에 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속물이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녀의 해명은 허위(거짓말)였거나 그녀의 남편이 허위 의식(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철학적 용어는 아니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를 개인적인 허위 의식으로 돌리기엔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전체가 이미 허위 의식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돈이 부족해서, 혹은 돈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우리는 허위 의식에 기댄다. 자신의 부족한 무엇인가를 감추거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물질로 도피한다. 허위 의식은 옷으로 신발로 가방으로 자동차로 집으로 혹은 보석으로 나타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자동차다. 특히 자동차는 외부에 노출이 많이 되는 고가의 내구소비재인데다가, 메이커가 주는 브랜드의 격차가 워낙 커서 우리의 허위 의식을 극도로 자극한다. 흔히들 자동차가 남자들의 장난감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날 여고 동창 모임을 다녀온 어느 중년 여성이 부부싸움을 벌인 일을 소개한다. 그녀는 경남의 한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의 지명을 가진 여고를 졸업하여(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시골여고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서울로 유학하여 꽤 괜찮은 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동안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동창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다녀 오면 기분이 항상 상쾌했다. 그러나 만남을 가질수록 힘이 들기 시작했다. 모임을 다녀 온 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해서 대학교 교수를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서울시 고위 공무원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는 생소했다. 학교 다닐 때 잘 알지도 못했는데 결혼 한번 제대로 해서 떵떵거리는 사모님이 돼있었다. 이혼해서 혼자 사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동대문 옷가게를 시작으로 크게 성공한 ‘회장님’도 계셨다. 한마디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했다.
문제는 그들의 과시욕이었다. 고등학교 때 폭력서클의 일원인 동창이 있었다. 반반한 얼굴에 술집 마담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잘 나가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유부남에 아이까지 둘 있는 남자였다. 그녀가 어떤 수완을 발휘했는지 그 남자는 본처와 이혼을 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졸지에 병원장 부인이 된 그녀는 여고 동창에 모임에 혜성처럼 나타나 재력을 과시했다. 오륜기 비슷한 심벌 마크를 단 독일제 차량을 몰고 나타난 병원장 사모님은 그녀가 몰고 온 국산 SUV 차량을 지그시 지켜 보더란다. 그때 그녀는 모멸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최근의 또 다른 동창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고 했다. 다른 동창의 집들이 모임에 처음으로 나타난 그 여성은 대화 도중 끼어들더니 “내 남편은 벤츠를 몰고 난 비엠을 몰아”라고 하더란다. 그녀가 “비엠이 뭐야?” 라고 물었더니 상대방은 한심하다는 듯이 “비엠더블유(BMW)!”라고 응수했다. 순간 그녀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녀는 신종압축어에 관한 한 깊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학생 시절 한 미팅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난 남녀들이 대화를 주고 받는데 ‘인터’니 ‘리버’니 하길래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 남학생이 ‘인터’는 ‘인터콘티넬탈 호텔’, ‘리버’는 ‘리버사이드 호텔’의 준말로 당시 한참 잘 나가던 무도회장(나이트 클럽)이라고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여전히 경상도 억양을 지우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졸지에 세련된 사교계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시골 처녀로 둔갑해 버렸다. 이른바 ‘비엠’ 사건은 그녀가 25~26년 전에 당한 아픈 기억을 되살려 주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집에 돌아와 남편을 보고 당장 외제차를 사달라고 졸랐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고 살아야 하느냐”고 말이다. 참을성 많은 남편도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단다. “정신 좀 차려! 철 없는 여편네야!”
요즘 30~40대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들은 집은 전세로 살더라도 차 하나만은 고급 승용차를 선호한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로 허리띠를 졸라매어 왔던 부모님 세대들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변호사 업계도 피해가지 못한다. 몇 해 전에만 해도 변호사로 새 출발하는 하는 분들이 사무실을 차리자마자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연륜이 깊으신 분은 국내의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정작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일천한 분들이 외제 승용차를 할부로 뽑는 경우도 있어 놀란 적이 있었다.
자동차 공장 하나도 없는 독일 차가 판매액으로 따져서 국내 2위에 올랐다고 한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일반화되어 가는 원인이 무엇인가?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하고 급기야 현재와 미래의 가정에 파고들고 있는 이런 현상을 우리 자신의 허위 의식으로만 돌린다면, 이거야 말로 허위 진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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