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우리 가족은 약 4년 동안의 제주 생활을 뒤로 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더불어 한라산 정상과 멀리 추자도까지 보이는 아름다운 교수 연구실을 두고 다시 변호사가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우리는 4년 동안 수없이 여행했던 제주의 주요 절경들을 돌고, 눈덮인 한라산을 한번 더 올랐으며, 겨울별미 제주방어를 맛봤다. 육지에 있던 지인들을 초대하여 깎아지르는 계곡 옆에 허름하게 지어놓은 별장에서 솔방울에 흑돼지를 맘껏 구우면서 제주생활을 정리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이삿짐을 싸던 날, 한라산 기슭에 있던 교직원아파트에는 솜이불처럼 폭신한 눈이 함박 내렸다. 멀리 가는 사람의 옷자락을 잡는 것 같기도 했고, 떠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풍광 하나를 선물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의 꿈같은 삶이 마무리되어가는 것에 진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 우리 가족은 좀 들떠있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큰아이는 프로 운동 경기를 맘껏 보러갈 수 있어서 좋아했고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둘째는 이젠 외가에 갈 때 짐을 싸서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했다.
우리 부부도 제주에 사는 동안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나는데다 섬생활이 주는 단조로움과 외로움에 약간은 지친 터라 복잡하고 다양하게 펼쳐질 서울생활에 살짝 마음이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서울생활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도전처럼 특별한 적응을 필요로 했다.
한강변의 아파트로 이사한 우리 가족은 한강에서 몰아치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몸과 마음이 얼어버려 겨울 내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따뜻한 해풍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자주 기침을 했고, 외출을 했다가도 서울은 왜 이렇게 춥냐며 서둘러 귀가하자고 졸라댔다.
두 번째로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수돗물 때문이었다. 4대강 공사와 겨울가뭄때문이라던 수돗물 녹조현상으로 막내에게는 급성아토피가 생겼다. 급기야 처음 써보는 연수기와 입욕제를 마련하고서야 가려움이 누그러졌으니 아이들이 겪은 서울의 첫 계절은 혹독 그 자체였다.
세 번째로 곤혹스러웠던 것은 교통체증이었다. 교통체증을 예측하지 못해 약속시간에 늦기 일쑤였고 자동차를 몰고 나가다가 되돌아온 경험도 여러 번이다.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도 순탄치는 않은 일이라 경복궁이며 제주에 없는 서울대공원같은 동물원, 갖가지 박물관을 맘껏 순례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계획들은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지나고 3월이 되어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을 하거나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조그만 시골학교를 다니다가 한 반에 마흔 명도 넘는 덩치 큰 학교에서 아이들은 한달 정도 지나자 그럭저럭 적응을 해 나갔다.
서울은 있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인 것 같다.
이른 새벽부터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올림픽대로를 타고가다 나도 모르게 고무되어 이 곳에서 정신없이 몰두해 멋들어지게 일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시간만 나면 항공사 웹사이트를 뒤지면서 할인항공권을 찾아 제주건 외국의 휴양지건 호시탐탐 떠날 궁리를 한다.
다시 시작한 서울 생활과 변호사 생활,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지만 그것이 곧 삶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인다.
이 글을 쓰는 4월 마지막 날인 오늘은 겨울을 완전히 벗어나 초여름같은 날씨에 내리쬐는 햇살을 즐길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한강변에 나가서 자전거를 탄다. 큰애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둘째와 셋째는 어린이 바구니에 담아서 우리 부부 자전거 뒤에 싣고 팔당댐까지 다녀오곤 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 서울에서의 휴일이 더욱 즐거워졌고 한강변에서 보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5월, 4개월 동안의 서울 적응기를 끝내고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바퀴에 몸을 맡기고 내달리듯 힘차게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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