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을 변호사로 살게 되었다.
아직 변호사란 호칭이 어색하다. 누군가 변호사님이라고 부르면 민망해질 때도 있다.
변호사가 되기 전 만 6년의 직장생활은 고정된 삶의 레일 위에 서있는 내 일상을 관통하는 여섯량의 기차처럼 지나갔다. 그 다섯번째 기차가 지나갔을 무렵 평사원에서 대리로 진급했다. 그전까지 ○○○씨라고 부르던 여직원들이 ○○○ 대리님이라고 호칭했다. 대리라는 지위와 ‘님’이라는 호칭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이웃에게 ‘님’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지도 않은 것 같아 죄스러웠다. 지위와 호칭의 형식성과 획일성을 그때 경험해 본 것 같다.
직업이 바뀌어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에게 이젠 변호사로 일한다고 얘기하게 됐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변호사가 됐는지, 취업은 됐는지, 판·검사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내가 왜 변호사가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이들은 드물었다.
로스쿨에 들어가기 전 한 대학 동기가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그의 눈길은 서른 중반에도 세상물정을 깨치지 못한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표정을 보면서 나도 법대를 지원한 고3 수험생처럼 답한 것 같아 얼굴이 확확 달아 올랐다.
어쨌든 나는 변호사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님’이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아름다운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며 곧 상영될 영화를 기다릴 때처럼 가슴이 뛰었고, 한 주먹 쥐어 넣은 팝콘으로 부풀어 오른 두 볼처럼 만족스러운 포만감도 느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싶었지만, 주위의 시선은 변호사란 ‘지위’에만 머물러 있는 듯해 항상 아쉬웠다.
세상이 변했다. 지위와 신분만으로 대우받던 시절은 이제 저물고 있다. 자스민 혁명으로 적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그 나라의 최고 지위에 있던 자들이 도망자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지위 자체의 존엄성에 의문을 표했다.
밑으로부터의 분노가 거칠 것 없이 위로 치솟고 있는 이 사회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 자체로 존경받고 대우받는 존엄한 지위와 신분은 더 이상 찾아 보기 힘들다. 이제껏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을 합격해야만 가까스로 될 수 있었던 변호사는 유교사회에서 극기복례의 자세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이겨낸 선비와 같이 대우받는 지위의 반열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지위의 존엄이 붕괴되는 시대의 거대한 조류에 변호사도 비켜서지 못하고 있다.
지위 자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변호사들은 그 지위가 아니라 그 하는 일로 대우받게 될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이 변호사 출신을 대통령과 서울시장으로 뽑은 것도 그들이 변호사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이 아름다워서였을 것이다.
자리나 지위가 사람을 만들 수도 있지만 하는 일이 그 사람과 지위를 만들 수도 있음을, 그리하여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또 그렇게 대우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경험하고 있다.
‘사(士)’란 호칭을 쓰는 직업군의 맏형격으로 변호사는 아름다운 일을 하는 데도 맏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나는 이제 남은 생을 변호사로서 정녕 아름다운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생의 종착역에서 아름다운 ‘님’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기다려 줘서 감사하다며 손을 내밀며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누군가에게 변호사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조금은 덜 민망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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