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란 직업은 사건과 조우하면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사건이 넘치면 기분이 좋고 사건이 손익분기점을 밑돌면 불안해진다.
사건을 실어 나르는 사람은 의뢰인, 즉 내담자이다. 변호사 경력 10년쯤 되면 내담자의 표정을 읽는 데는 귀신이 된다. 승소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하여는 가까이 가려고 하고, 소유 또는 지배하려고 하는 탐심이 일어나서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별의별 생각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반면에 패소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하여는 멀어지려고 하고, 상담을 빨리 끝내려고 하는 미세한 진심이 일어난다. 승패가 어중간한 사건에 대하여는 애쓰고 휩쓸리면서 의심과 혼미함으로 인해 치심(癡心)에 빠져든다. 이 세 가지 심리갈등이 변호사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 또는 패소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변호사는 사건의 추이에 대하여 생각을 일으키고 숙고하며 분별하고 예측불허의 결과에 대해 근심한다.
요컨대, 고뇌와 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한 변호사는 자기를 성찰하지 못한 채 욕망과 갈애의 노예로 살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서 엄청난 비애를 느낀다. 이런 심리적 갈등과 위기를 ‘어떻게 견뎌내느냐’ 하는 것이 대다수 변호사들이 직면한 화두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설득의 심리학’‘유쾌한 심리학’ 등의 심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며 강세를 띠고 있는 이유도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업인들의 심리적 위기가 보편화되면서 대중적으로 폭넓은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말했듯이, 실제로 변호사는 개념과 법리적 증명에 대한 생각에서 떠나질 못하는 서글픈 존재이다. 생각은 대상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사건과 맞부딪침으로 촉발된다.
생각과 지식은 항상 걸음을 함께 한다. 법률지식은 변호사에게 필요한 무기이다. 그러나 무기를 잘못 쓰면 도리어 자신을 해하듯, 법률지식도 윤리와 도덕의 밑받침이 없다면 식자우환이라는 말과 같이 오히려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 그 법률지식은 ‘지금 여기’에 대한 지혜로운 앎이 아니라 변호사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지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법률지식의 사회적 유용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과거를 되새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 현재에 일어나는 법(dhamma)을 바로 여기서 통찰하라”는 부처님의 유명한 가르침이 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역주행한다. 나는 과거에 이런 유사한 사건을 경험하여 승소하였다고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고, 앞으로도 이와 같이 이 사건도 승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 즐거워한다. 그래서 미래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탐욕은 법률지식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만든다. 그것은 영원한 배타적 가치를 주장하기 때문에 변호사로 하여금 전투적 방어모드에 돌입하게 만들고 그 가치는 자신의 갈애에 의해서 자양분을 공급받는데, 만약 그것이 침해당하면 분노한다. 그래서 변호사들의 고정관념은 생각의 정글이고 생각의 광야이고 생각의 동요이고 생각의 결박으로 자신의 본래면목을 어둠 속에 가두어 넣는다.
호흡은 현재의 마음상태를 반영한다. 마음이 생각의 늪에 빠져 있으면 호흡은 거칠고 무겁고 빠르다. 반면에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하면 호흡은 규칙적이고 점잖다. 이렇게 내 안의 호흡은 자신의 마음상태를 점검하게 하는 지표가 된다. 그러나 명상수행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들숨날숨에 주의를 고정시키고 호흡관법을 해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호흡명상의 유익함을 모르기 때문에 애초부터 호흡에는 관심이 없다. 나 역시 호흡명상을 하기 전까지 코끝에서 들어가고 나가는 들숨날숨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다.
부처는 자기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음을 집중하는 여러 가지 수행법을 고안했다. 그 가운데 몸과 마음의 활동을 탐색하는 가장 좋은 기술은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한 호흡관법이다. 호흡명상은 자의적으로 호흡을 조정하는 호흡 훈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과정에 그 호흡의 흐름이 ‘짧든 길든 무겁든 가볍든 거칠든 부드럽든’ 이를 인식하지 않고 ‘지금 여기’ 실재하는 들숨날숨을 알아차리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어떤 혼란도 없이 호흡에 주의 집중하는 수행이다.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법(物心現想) 가운데, 내 안의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 현재의 느낌과 갈애 등을 자르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차리는 매우 소중한 명상기법이다. 그런 취지에서 생명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인 호흡을 조절하고 강화하는 수행법인 요가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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