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역에 작은 호두과자집이 생겼다. 작고 청결한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과 호두과자를 주문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흔히 먹던 종류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노릇노릇 구워진 부드러운 껍질을 양쪽으로 가르니까 고동색의 팥소에서 윤이 난다. 입속에 넣으니까 커다란 호두가 부드럽게 깨지면서 팥소의 단맛과 섞여 구수한 향기가 가득 퍼졌다.
아득한 유년시절이다. 나는 찐빵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찰진 밀가루 반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윤기 나는 팥 앙금을 그 속에 집어넣는 빵집 주인이 부러웠다. 나는 호두과자집 주인에게 과자를 만들 때 와서 일을 해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얼핏 텔레비전의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주인의 허락을 얻었다.
비닐장갑과 앞치마를 준비해서 아침 일찍 호두과자집 주방으로 갔다. 버터와 설탕 그리고 계란이 들어간 고운 밀가루가 노르스름한 반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호두과자 기계 앞에 섰다. 어린 시절 보던 붕어빵 기계가 생각났다. 기름을 바르고 반죽을 넣고 통속에 있는 팥앙금을 조금 넣고 뚜껑을 닫으면 잠시 후 노릇하게 구워진 붕어빵이 탄생했었다. 비슷했다. 나는 굵은 호두알이 담긴 플라스틱통을 배당받고 기계 앞에 섰다. 돌아가는 기계에 기름을 바르고 직접 손으로 호두알을 집어넣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기계가 돌아서 내 앞에 오는 순간 입을 쩍 벌리고 호두를 달라고 했다. 타이밍을 놓치면 팥소와 반죽이 부어지는 쪽으로 가 버리기 때문에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손이 굼떠 호두알이 기계 사이에 빠지기도 하고 호두 넣는 걸 놓치기도 했다. 호두과자집 주인아줌마가 내게 옆에서 설명한다.
“얼핏 보기에 간단한 것 같아도 이거 쉬운 일 아니에요. 날씨나 습기에 따라 반죽의 발효가 달라져요. 또 호두과자 기계가 어느 정도 달궈져 있느냐에 따라 호두과자의 색깔이 달라요.”
한 시간쯤 굽히고 일을 했더니 등이 뻐근하면서 통증이 온다. 나는 자리를 바꾸어 이번에는 구워진 호두과자를 한알 한알 얇게 포장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밉게 싸시면 안 돼요. 하나하나 반듯하게 잘 싸셔야지요. 그렇게 하시면 우리 호두과자 가게 망해요.”
주인아줌마가 생긋 웃으면서 주의를 준다. 보니까 내가 적당히 대충대충 포장하고 있었다. 남편인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럼 군대식으로 주인아저씨는 사수, 나는 조수로 시스템화해서 일합시다. 아저씨가 기름 바르고 나는 그 다음에 타이밍 맞춰 호두를 집어넣을게. 리듬을 맞추죠.”
“그러시죠.”
주인아저씨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오늘 팔 호두과자를 거의 다 만들었다. 내 일도 끝났다. 마음씨 좋은 주인부부는 내게 호두과자가 가득 든 묵직한 통 하나를 일한 대가로 주었다.
다음에는 중국음식점에서 수타면을 뽑는 일을 해보고 싶다. 젊은 시절 변호사를 하면서 해보고 싶은 직업이 많았다. 택시기사를 잠시 병행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 세상의 바닥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등대지기도 해보고 싶었다. 앞으로는 여건이 될 때마다 하나하나 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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