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학기, 동아대학교 로스쿨에서 2년차 학생들에게 ‘법문서 작성’ 과목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연령대에서, 학부전공이나 사회경력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보였다. 그들이 가진 다양한 이력이 훗날 법조인이 되었을 때 풍부한 자산이 되어 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고 부럽기도 했 다. 하지만 그 부러움도 잠시, 학생들과 가까워질수록 곧 현실적인 걱정과 염려가 내게도 몰려들었다. 법조계의 현실과 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법률가가 되어야 할 것인지는 이들에게 절박하고 당면한 고민거리였다. 법문서 작성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러던 참에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생겼다. 공익변호사 그룹인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와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가 로스쿨 초청으로 학생들을 만나러 온 것이다. ‘공감’과 ‘어필’은 모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변호사 모임이다. 남다르게 사는 두 변호사의 생생한 이야기는 법조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보람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학생들에게는 불투명한 미래를 비춰주는 한줄기 빛처럼 반갑고 가슴 설레게 하는 메시지였음이 분명하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학생들에게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진행 중인 공익소송을 소개했다.
당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복역 중이거나 만기 출소한 원고들을 대리하여 국가를 상대로 과밀수용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있었다. 인권의 사각지대로 사회적 시선을 불러오기 위해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일련의 소송들 중 하나인데 새우잠, 칼잠을 잘 수밖에 없도록 사람을 밀어 넣는 행형현실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학과공부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쁠 학생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게 공익소송에 봉사를 자원해 왔고, 이렇게 하여 변호사들과 로스쿨 학생들은 힘을 합해 공익소송 진행에 한층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죄의 대가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작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도 행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로만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는 국내외를 망라하여 모든 규정과 지침, 관련된 결정과 판례를 검색하고 분석하였다.
또한 과밀수용이 수용자에게 미치는 정신적, 신체적 영향을 밝히기 위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결과, 개별 연구자들의 많은 논문들도 검토하였다.
변호사들과 로스쿨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부산지방변호사회관에 모여 소송 진행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 과제를 분담해 왔다. 변호사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분량의 과제들도 학생들이 분담해 준 덕분에 빠르게 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판례를 찾아 관련성을 판단하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 번역하는 일에서는 학생들의 활약이 아주 컸고 지금은 어렵게 찾아낸 독일 판례들의 번역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우리는 과제 결과물을 다음카페 ‘피구금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에 올려 같이 공유하고 코멘트를 주고받는다. 이 비공개 인터넷 카페는 학생들이 공익소송에 결합하게 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할 방법으로 간사인 윤재철 변호사가 특별히 시간을 들여 개설하였다.
법원에 제출하거나 도착된 서류들도 카페지기 윤 변호사가 그때그때 스캔해서 올려 주어 변호사들과 학생들이 재판기록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소송당사자들의 동의가 있었고 학생들은 비밀 준수 서약서를 인권위원회에 제출하였다.
학생들은 그동안 검색하고 검토한 자료들을 토대로 조별로 토의하고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연습도 하였다. 앞으로 변론기일이 지정되면 학생들은 법정 참관을 하며 법원의 재판진행과 변호사의 변론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윤 변호사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무모하지만 위대한 소송이라 하였다. 비록 미약해 보일지라도 후일 대한민국 인권역사에 길이 남을 도전이라는 뜻일 게다. 이에 더하여 나는 또 하나의 의미를 본다.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인권옹호라는 법조인 본래의 사명을 심어주고 공익변호사로서의 전망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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